2019년 11월 21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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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동서 해양무역의 교차점 ‘말라카’(1)
황금반도 ‘식민지의 歷史’…다민족·다문화 꽃피워

  • 입력날짜 : 2018. 08.28. 18:25
과거와 현재, 다민족·다문화가 공존하는 말라카의 아름다운 야경.
왜 여행을 가는가? 그곳에 ‘다른 문화와 자연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은 ‘이런 삶도 가능한 것이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대체 믿음이란 무엇인가’하는 고민스런 생각을 하게 한다.

어디를 여행가도, 인종과 자연은 달라도 다 비슷하게 산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동남아는 그렇지 않다. 가는 지방마다 이질적이다. 확실한 색깔과 문화가 느껴진다. 말라카는 그 중에 하나다. 내가 ‘말라카’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중국, 인도, 이슬람, 유럽 무역상들을 그토록 유혹했던 곳을 올여름 한창 더울 때 다녀왔다.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 내가 말라카를 좋아하는 이유

말라카는 말레이 반도의 유서 깊은 역사도시다. 말레이시아의 뿌리다. 우리나라 경주와 같은 곳이다. 고대 동서 해상무역 중추역할을 했던 곳이다. 도시에는 아직도 옛 시대의 유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말라카를 생각할 때마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란 말이 꼭 들어 맞다고 생각된다. 옛날 남자들은 경제적 이익이나 지식적 갈망으로 먼 거리를 이동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새로운 혼혈이 이뤄졌고, 그 혼혈족은 또 다른 혼혈을 만들어 갔다. 그리하여 다양한 종족이 그 땅에 생겨나게 했다.

언젠가부터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도시생활에 물든 나 지신의 탈출구를 찾고 싶어 했다.

말라카가 바로 그 찾고자 하는 곳이었다. 그들의 삶이 독특하고 극도의 이질감을 느끼게 했고, 이는 나로 하여금 나의 고유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눈을 뜨게 했기 때문이다.

▶ 말레이반도 원주민은 누구일까?

아주 옛날에 동남아시아에는 누가 살았을까? 여행 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묻는 질문이다.

먼 옛날 동남아시아에는 ‘인도계 족’과 ‘중국-티벳계 족’이 나뉘어 살았다. 그 경계는 오늘날 말레이와 태국의 국경이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에는 ‘인도계’가 살았고, 그 북쪽의 동남아에는 ‘중국 남방계-티벳계’가 살았다고 보면 된다. ‘인도네시아’라는 말 자체가 ‘인도인이 사는 땅’이란 뜻이다.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말레이반도는 ‘인도인과 중국-티벳계와의 혼혈이 좀 이뤄져 ‘인도네시아계 말레이족’으로 보면 되고, 필리핀은 인도인과 아주 오래 전에 헤어져 특징이 좀 다르게 변해 ‘폴리네시아계’로 보면 된다.

결과적으로, 말레이반도의 원주민은 인종학적으로 ‘남인도계(드라비다족)에 속하는 말레이족’이라 봄이 옳다. 범-인도계 종족에 해당된다. 이들은 수만년 전부터 동남아 남부 해안지역(인도네시아와 말레이 반도)을 중심으로 흩어져 살았다.
포르투갈이 말라카를 점령한 후 세운 최초 교회 앞에서 필자. 1511년 서양(포르투갈)이 처음 도착했음을 알 수 있는 현판이 그대로 남아있다.

▶ 최초에는 인도인이 왔다

시간은 흘렀다. 선박과 항해술이 발달했다. 3천년 전부터 남인도 사람들인 ‘드라비다족’이 바닷길로 이들과 접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먼 옛날 자기 선조들의 후예를 수 만년이 지난 후에 다시 만났던 것이다. 종교 전파의 목적도 있었으나, 상업적 목적이 컸다. 부수적으로, 그들은 정신적 삶인 새로운 종교(힌두교)와 선진 농업기술(벼농사) 등을 전해왔다. 주민의 삶은 나아지고, 남인도의 힌두문화가 이곳에서도 꽃 피워갔다.

그러나 2천년 전, 기원 전후로 그들 인도인들은 불교라는 새로운 문화를 또 전해왔다. 말레이반도에 힌두교는 쇠퇴하고 불교문화가 빠르게 지배해 갔다. 사원에는 시바 상이 내려지고 부처님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갔다. 급기야 6-8세기부터는 불교문화가 화려하게 꽃 피웠다.

▶ 8세기부터 아랍인 밀려와

그러던 중, 8세기부터는 아랍 상인들이 하나 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회교(이슬람교)’를 가지고 들어왔다. 점점 무슬림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회교도도 늘어갔다. 힌두왕국은 점차 산악지대나 섬으로 밀려났다.

12-15세기에는 이슬람문화가 최고로 꽃 피웠다. 곳곳에 회교사원과 무덤을 남겼다. 뿐만 아니라 건축양식도 바꿔졌다. 이 때의 건축물이 지금까지 전해 오는 것들이 많다.

‘모스크’ 뿐만 아니라 술탄이 거주했던 ‘왕궁’, 무슬림 거상들이 거주했던 ‘하벨리(저택)’ 등이 다수 남아 있다. 그 중에는 이슬람 건축양식에 중국식이 가미된 건축물도 더러 있다.
여러 인종의 혼혈족으로 이뤄진 말라카 인. (‘페라나칸’이라고 부른다.)

▶ 16세기 ‘대항해 시대’ 식민 역사

16세기 들어 ‘대항해 시대’가 시작됐다. 선박기술과 항해술의 발달과 함께 저 먼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옛 무역도시인 말라카와 싱가포르 등이 가장 심했다. 첫 도착은 포르투갈 인이었다.

곧 이어 네덜란드가 들어왔다. 네덜란드는 더 오랫동안 더 많은 것을 건네주었다. 18세기, 영국이 들어오면서 더욱 엄청 변했다. 서구문화가 강하게 파고들었다.

이들 제국은 강렬한 흔적을 곳곳에 남겼다. 특히, 요새를 중심으로 한 포구 지역이 그렇다.

견고한 건축으로 원형대로 지금껏 잘 남아 있게 했다. 요새를 중심으로 고건축물이 집합돼 있다. 그 자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을 만들었다. 건축물은 대부분 총독관저, 화물창고 등이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국가가 이곳을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해상무역의 발달과 함께, 동서양 사람들이 물밀 듯 들어왔다. 다민족 도시가 됐다. 원주민인 말레이인은 물론이고 중국인, 인도인, 아랍인, 유럽인(네덜란드와 영국) 등의 혼혈이 일어났다. 물론 가장 숫자가 많은 중국계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말이다.

▶말라카 역사가 시작되다

말레이 반도의 거주역사는 깊다. 그러나 역사기록이 없다. 다만 고고학적 유물이 증명할 뿐이다.

말레이시아 기록역사는 14세기부터 시작된다. 파라메스와라(Parameswara) 왕자와 관계가 있다. 그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의 팔렘방 지방에 번성했던 고대왕국 ‘스리위자와’ 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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