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8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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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병채 박사의 신 해양실크로드] 신비로운 나라 ‘미얀마’ (5)
고대 ‘마한’의 것과 유사했던 ‘마르타반 항아리’

  • 입력날짜 : 2019. 05.28. 18:23
마르타반 항아리의 원산지(모타마 도시와 마르타반 만)의 위치. 필자가 여행했던 ‘몬족 왕국’의 경로(양곤→바고(페구)→타톤→모타마→몰메인)상에 있다.
마르타반 항아리는 고대부터 미얀마에서 무역품으로 사용됐다. 14-16C 대항해시대에는 더욱 각광받았다. 물, 기름, 소금, 곡식 등 다양한 것을 담기 위해 구매했다. 이로 인해 미얀마 남부지역에는 여러 도자기마을이 번성했다. 특히, 아랍과 인도인에게 인기리에 수출됐다. 오늘날 중동, 필리핀, 일본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것으로 봐서 그렇다.

▶해상실크로드 필수품 ‘마르타반 항아리’
문병채 (주) 국토정보기술단 단장

‘용 항아리’ 또는 ‘페구 항아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미얀마에서는 ‘신오’(Shink-Ole), 일본에서는 이를 ‘흑유대호’(黑釉大壺)라 불렀다. ‘검은 유약을 바른 큰 항아리’라는 뜻이다.

마르타반 항아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350년대였다. 아랍 상인 이븐 바투타(Ibn Battuta)는 마르타반 만(灣)의 한 항구를 찾았는데, 이때 항해용 음식을 담아두기 좋은 용기를 발견하고 ‘먼 항해에 필요한 음식물들을 소금에 절여 담아두면 좋다’며 이 항아리를 무역품으로 팔러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큰 사이즈에는 술, 물(식수) 및 쌀 등을 저장해두고, 작은 사이즈에는 후주, 기름, 약재 등을 저장한다.

내륙 고산지대에 살고 있는 일부 부족들에게 이들 항아리는 생활용품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들은 마르타반 항아리가 재난을 경고 해주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고 믿고 있다.

주민들은 집안의 ‘가보’로 간주하고 자손 대대로 물려주고 있다. 만일 자손이 없는 경우는 타인에게 넘겨주지 않고 파괴해 없애버리는 전통이 있다. 마르타반 항아리의 갯수를 보면 그 집 ‘부의 수준’을 알 수 있기도 했다.

그러나 머니해도 실크로드 항해용 선박의 필수품이었다. 먼 항해를 위해 꼭 필요했다. 물과 곡식, 소금에 절인 음식 등을 담고 여러 날을 항해해야 했기 때문이다. 대형은 높이는 1m20㎝-1m30㎝에 이른다.
미얀마의 마르타반 항아리. (국립 미얀마 민속촌)

▶한반도 고대국가 ‘마한’과 유사

이 옹기는 또한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마르타반 항아리에 담아 땅에 묻는 풍습을 가진 부족도 있다.

항아리가 사람의 자궁을 닮았다고 생각해, 자궁을 통해 다시 환생하라는 소망을 위해서다. 한편에선 항아리가 알과 닮아 사후 재생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도 한다.

우리나라 고대국가 ‘마한’에서 행해졌던 매장 풍습과 같다. 옹기 모양이나 색깔도 비슷하다.

즉, 백제시대의 옹기와 비슷하다. 목 부분은 좁고, 아래로 내려가며 불룩해 졌다가 다시 좁아지는 것이 그렇다. 옆에 손잡이 고리가 달려있고, 운반이 용이하도록 고리에 구멍을 뚫어 로프를 걸 수 있도록 돤 것도 그렇다. 또 외부에 용, 꽃, 새, 각종 풀이 그려진 것도 유사하다.

나주 국립나주박물관에 가면 이를 확인할 수가 있다. 전시장에 큰 옹관 ‘1세트’가 주둥이를 맞댄 채 놓여 있다. 그 안에 시신을 안치했다고 쓰여 있다.
우리나라 마한시대 항아리(국립 나주 박물관)

영산강 유역의 고분에서 출토된 것을 전시해 놓은 것이다. 물론 이런 합구식(合口式·두 개를 1세트화 한 모양)이 아닌 옹관 하나만을 이용해 무덤을 만든 경우도 많다고 덧붙여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곳 반남 고분군에는 대형옹광고분 수십 기가 분포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 고분양식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확연히 구별되는 독특한 고분양식임을 볼 때, 그리고 이 묘제가 3-6C까지 약 300년 동안 영상강유역에서 크게 유행했다는 것을 보면 고분에서 출토된 유물은 남중국, 왜 등과 활발한 교류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영산강 수운을 이용한 해상활동이 매우 활발했고, 해상실크로드를 따라 동남아나 미얀마, 더 멀리 인도와 아리비아까지 문화교류가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도자기 말고 금속제품, 유리제품, 인적 교류의 흔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것도 이를 사실화하고 있다. 마한의 이런 묘제는 후에 영산강 유역이 백제에 편입되면서 사라진다.

▶현재 인기있는 골동품으로 판매

마르타반 항아리를 보기 위해 양곤에 있는 박물관과 골동품 점을 찾았다. 참 아름다운 색이었다. 검은색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처음 느낀다.

불빛을 비추면 영롱하게 오색찬란한 색이 발한다. 블랙홀처럼 주위를 빨아들이는 흑색 항아리도 있고…. 세상 모든 것을 내튕길 듯 빛나는 검은 항아리도 있다. 청자가 우아하고 백자가 화사하다면, 이는 우아함과 화사함을 함께 갖는 화려한 그릇이다.

현재도 활발히 골동품으로 거래되고 있었다. 길고 긴 역사를 거친 항아리가 유물이 된 것이다. 모두 가정의 부와 지위의 상징으로 장식품이나 실용품으로 사용돼 온 것들이다. 그 가치는 항아리 모양과 디자인의 희귀성과 보존상태에 따라 좌우된다고 한다. 희귀한 것은 부르는 것이 값일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에 구입한 작은 항아리! 정말 자태가 우아하고 아름답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다. 우리 집 ‘가보’로 보관하기로 했다.
영산강 유역 문화권 옹관묘(국립 나주 박물관)

현재도 몬족의 ‘까우밍’(Kyauk Myaung) 마을에서 제작되고 있다고 한다. 퓨(Pyu)유적지 와는 약 30㎞ 떨어져 위치한 마을이다. 버마족이 몬족을 침약하면서 붙잡아 가서 정착시킨 곳이라고 한다. 당시 몬족은 버마족에 비해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솜씨를 자랑했다고 한다.

미얀마 대표적 수공예품안 빤윤(대나무 공예), 빤부(나무 공예) 등의 장인도 모두 몬족이라고 가이드가 덧붙였다. 현재도 미얀마에서 신오는 중요한 생활물품 중 하나다. 정초가 되면 새 신오를 구입하는 것이 가정 내 주요 행사 중 하나다.

▶여기서 유래된 ‘모타마 시’와 ‘마르타반 만’

마르타반은 오늘날 ‘모타마’라 불리는 지역이다. 13-14C 몬왕국의 수도였던 곳이다. ‘마르타반 항아리’(Martaban Jar)는 이곳에서 생산된 것에서 유래했다.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에도 나온다. 고대 아라비아와 남인도 사람들이 ‘황금의 땅’(수완나품)으로 불렀던 곳이다.

‘모타마’는 현재 몬주의 작은 도시이다. 옛 몬 왕국인 한타와디 왕조의 초기 수도였던 곳이다. 도시 중심에 있는 언덕(구릉지)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 옛날 왕궁이 있던 터라고 한다. 산 정상에 넓은 구릉지와 큰 호수가 3개가 있었다. 그래서 고대왕궁이 위치했다고 한다. 현재 많이 훼손되고 허물어졌으나 그 원형은 아직도 남아 있었다. 원형을 복원하고 있으나, 주민들이 생업 상 복원을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산록에는 지금도 고대 유물로 가득 차 있다. 현재도 굴이 남아 있는 지하 궁전에는 온갖 보석과 금은보화가 묻혀 있다고 전한다. 뿐만 아니라 천년이 넘은 불탑과 사원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이곳 몬 왕국의 왕자와 결혼해 살았던 버마족인 바간왕조의 딸(공주)가 살았던 곳도 흔적이 남아 있다. 최근에 시멘트로 보수하면서 원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산 정상에서 본 모타마 시가지는 아름다웠다. 높은 산은 아니었지만 평야에 솟아 있어 풍광과 경치가 더없이 좋았다. 열대의 야자나무가 가득한 시가지와 살윈강이 360도로 조망된다. 일몰이 되니 더욱 아름답다. 반대편엔 달빛이 떠 있다.

멀리 몰메인(Moulmein)과 연결되는 ‘탄륀대교’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미얀마에서 가장 긴 다리 중 하나다.

아름답게 설계돼 있다. 길이 3㎞로 도로와 철도가 함께 지나고 있었다.

그 넘어로 ‘마르타반 만’(Gulf of Martaban)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왔다. 미얀마 남부의 안다만 해에 있는 만이다. 만의 이름은 항구 도시인 모타마(혹은 마르타반)에서 유래했다. 시타웅 강과 살윈 강이 이곳으로 흘러든다. 마르타반 만의 지리적 특성은 조수가 강한 것이 특징이다. 만 서쪽의 ‘코끼리의 코’ 부분의 최고 조차는 7m에 달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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