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2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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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인간 세상을 사절하고 홀가분하게 가니[1]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23)

  • 입력날짜 : 2019. 06.04. 18:22
絶命自輓詩(절명자만시)
매천 황현

인간 세상 사절하고 홀가분 가나니
죽으려 했었는데 신선 길을 오르고
지난일 모두 꿈이요 내세는 무엇인가.
一謝人間去浩然 時欲乘化始登仙
일사인간거호연 시욕승화시등선
往事思之都是夢 來生有無亦何緣
왕사사지도시몽 내생유무역하연

인간은 태어났다가 죽어가기 마련이다. 언제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본다. 의(義)를 생각하면서 목숨을 다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무런 의미 없이 죽어가는 사람도 있다. 절명을 결심하고 절명시를 썼고, 스스로 자만시를 쓰고 죽는 경우는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만 매천은 의분을 참지 못한 나머지 해냈다. 지난 일을 생각하니 모두가 꿈인데, 내세에 있고 없음이 나에게 무슨 인연이냐’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한 번 인간 세상을 사절하고 홀가분하게 가니’(絶命自輓詩)로 제목을 붙여 본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가는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으로 구한말의 시인이자 애국지사다. 1879년 스스로 학문이 부족함을 느끼고 서울로 올라 와서 강위를 스승으로 해 이건창, 김택영 등과 교유하면서 전국적으로 문명이 알려지게 됐다. 이들과 정신적인 교류를 지속적으로 가졌던 인물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한 번 인간 세상을 사절하고 홀가분하게 가니 / 때로는 죽으려 했는데 이제 비로소 신선 길 오르네 // 지난 일을 생각하니 모두가 꿈인데 / 내세에 있고 없음이 무슨 인연인가]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목숨을 끊으면서 자신의 만사시를 쓰다1]로 번역된다. 시인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사실상 국가의 주권이 상실됐다고 생각했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 체결 소식을 듣자 비통함을 이기지 못하고 며칠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결심을 한다.

시인은 신선으로 오른다는 긍정적인 시상을 일으켰다. 인간이 한 번 세상에 왔다가 사절하고 홀가분하게 떠나가는 것인데 때로는 죽으려고도 했는데 이제야말로 비로소 신선 길에 오르게 됐다고 했다. 죽음을 쉽게 택할 수는 없을진대 의인은 늘 그렇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화자는 지난날 질곡의 삶을 살았음을 회고하면서 시상을 다듬어 놓았을 것이다. 지난 일을 생각하니 모두가 꿈만 같은데, 내세(來世)에 있고 없음이 무슨 인연이 있단 말인가라는 시심을 이끌어냈다. 요즈음 교회를 비롯해서 종말론과 내세론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을 보면 대조가 된다. 후구에는 [아직 머리에 짧은 머리털이 있는 것만도 다행인데 / 손에서 책을 놔야할 이 일을 어찌 견디랴 // 한 번 묘지에 눕게 되면 누가 나를 일으키겠나 / 백년 천년 만년 길이 잠자리라]라고 했음이 주목된다.

※한자와 어구

一謝: 한 번 사절하다. 人間去: 인간이 가다. 浩然: 호연하다. 時: 때로는. 欲乘化: 죽고자 하다. 始登仙: 비로소 신선 길에 오르다. // 往事: 지난 일. 思之: (그것을) 생각하다. 都是夢: 모두가 꿈이다. 來生: 내세가 있다. 有無: (내세가) 없다. 亦何緣: 또한 어떤 인연인가.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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