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4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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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익산 무왕길
무왕의 꿈과 백제의 혼백을 따라 걷다

  • 입력날짜 : 2019. 06.18. 19:10
익산 왕궁리유적은 1989년부터 20년 이상 진행된 발굴조사결과 백제 무왕 때 왕궁으로 건립되어 일정기간 사용되다가 그 자리에 다시 사찰이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백제 무왕은 42년 동안 재임하면서 왕권을 강화하고 나라를 안정시켰다. 무왕은 강화된 왕권에 힘입어 익산에 별도를 만들고, 장차 천도할 계획까지 세웠다. 이리하여 익산 땅에 왕궁과 정원, 큰 사찰을 짓고 성을 쌓았다.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은 공주, 부여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구로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익산지역의 백제문화유적을 따라 걷는 길이 있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유적들은 대부분 무왕과 관련이 있어 이름도 ‘무왕길’이다. 익산 무왕길은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라 어디서 출발해도 상관이 없으나 대체로 익산쌍릉에서 시작한다. 사적 87호로 지정된 익산쌍릉은 말 그대로 두 기의 무덤이다.

100m 사이를 두고 대왕릉과 소왕릉이 자리하고 있다. 쌍릉은 1917년 발굴조사결과에 따르면 출토유물과 무덤형식, 규모가 부여 능산리고분과 비슷하다. 무왕과 선화공부 무덤으로 추정한다.

익산쌍릉에서 익산토성으로 가는 길은 포장도로와 비포장 임도를 따른다. 익산토성은 흙과 돌로 쌓은 산성으로 높지 않은 오금산 산등성이에 포곡식으로 쌓았다. 둘레가 690m에 이른다. 성안에서는 백제 사비시기 토기와 기와,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됐다.
국보 제44호로 지정된 왕궁리 5층석탑은 왕궁에서 사찰로 변해가는 과정에 건립된 탑으로 전형적인 백제탑 양식이다.

토성이 있는 오금산 정상에 오르자 주변의 풍광이 한눈에 바라보인다. 동쪽 멀리 전주 서쪽 산줄기와 비산비야를 이룬 너른 평지가 펼쳐진다. 익산시내의 고층아파트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푸른 초원을 이루고 있는 토성은 산등성이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익산토성을 뒤로하고 미륵사지 방향으로 산길을 따른다. 소나무 숲길은 임도로 이어지고, 임도는 밭길로, 밭길은 마을길로 연결된다. 주변은 마을과 모내기를 마친 논들이 평화롭게 공존한다. 북쪽에서는 삼각형 모양의 미륵산이 부드럽게 들판과 마을을 감싸준다. 미륵산은 무논에 자신의 그림자를 내려놓았다.

미륵사지 입구에 도착하자 최근 복원공사를 마치고 개방된 미륵사지석탑을 빨리 보고 싶어진다. 미륵사지석탑을 만나려는 사람들로 주차장은 만원이다. 나는 복원공사에 들어가기 이전과 복원공사 중에 한 번씩 들른 바 있다. 올 때마다 미륵사지의 드넓은 터에 놀라곤 했다. 미륵사지는 우리나라 절터 중에서 가장 크다.

마륵사지 뒤편에는 미륵산이 미륵보살처럼 듬직하게 앉아있다. 넓은 터에 남아있는 것이라곤 서석탑(국보 제11호), 복원된 동석탑, 당간지주 두 기(보물 제236호), 금당과 회랑 터에 남아 있는 주춧돌들, 연꽃잎이 새겨진 석등받침들 뿐이다. 하지만 텅 빈 절터와 함께 이들이 전해주는 감동은 당우로 가득 찬 어떤 사찰보다도 진하다.

발굴을 통해 확인된 가람배치를 보면 미륵사지는 동탑과 서탑이 있고 그 중간에 목탑이 있었으며, 각 탑의 북편에 금당의 성격을 가진 건물이 하나씩 있었다.
면적이 5만㎡에 이르는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청신하고 운치 있다.

미륵사지에 있는 동탑은 미륵사지 석탑의 발굴결과를 바탕으로 1993년 복원한 석탑으로 온전한 미륵사지 9층석탑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

미륵사지 서석탑은 2001년 10월부터 해체·보수작업을 시작해 18년 만에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9년 4월30일 개방됐다. 이번에 복원된 석탑높이는 14.5m, 너비 12.5m에 이른다. 석탑 1, 2층은 옛 모습 그대로, 3층부터 6층까지는 일제 강점기에 발라놓은 시멘트를 뜯어내고 원재료의 81%를 사용해 남아있던 모습 그대로를 복원해 석탑의 진정성과 구조적 안정성을 확보했다. 미륵사지석탑은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 또한 가장 큰 탑으로 장중함과 단아한 면모를 함께 지니고 있다.

미륵사지를 나와 국립익산박물관 신축부지 옆으로 돌아서 미륵산 방향으로 걷는다. 미륵사지 옆길을 걸으며 펜스 너머로 미륵사지를 바라본다. 두 기의 석탑만이 우뚝 서 있는 드넓은 폐사지에서 텅 빈 충만감이 느껴진다. 길을 걸으면서도 미륵사지에서 잠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다.

미륵사지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우리는 숲길로 들어선다. 길 아래로는 전북과학고등학교가 있다. 갈림길이 있는 곳마다 미륵산 정상으로 통하는 등산로를 만나지만 무왕길은 산자락을 완만하게 돌아서간다. 구룡마을에 도착했다.
논 가운데에 하천을 사이에 두고 두 기의 고도리 석불입상이 남자와 여자의 모습을 하고 서 있다.

마을 입구에 느티나무 한 그루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마냥 늠름하게 서 있다. 익산에서 가장 오래된 보호수로 수령은 300년을 훌쩍 넘어섰고, 가슴높이 둘레가 4.6m나 된다. 나무 밑에는 평상마루가 있어 마을주민들의 쉼터역할을 한다.

느티나무에 앉아있으니 마을 앞으로 커다란 대나무밭이 보인다. 구룡마을 대나무숲은 면적이 5만㎡에 이른다. 논길을 건너 대나무숲으로 들어선다. 구불구불 나 있는 대나무숲길이 청신하고 운치 있다. 대숲 길을 걷는데 대나무가 사각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금마저수지에 도착했다. 금마저수지를 미륵산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대한민국 지도처럼 보인다. 대한민국 지도를 닮았다고 해서 지도연못이라고도 불린다. 저수지 주변에는 서동공원과 마한관이 있는데, 공원에는 백제무왕의 동상과 서동 선화공주 조각상 등 많은 조각품이 전시돼 있다.

금마면소재지에서 왕궁리유적전시관으로 가다보면 중간에 4.2m 높이의 고도리 석불입상(보물 제46호)을 만난다. 논 가운데에 하천을 사이에 두고 두 기의 석불이 마주보고 서 있다. 이 둘은 남자와 여자인데,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섣달 해일(亥日) 자시(子時)에 하천이 얼어붙으면 서로 만나 회포를 풀다가 닭이 울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는 설화가 전해져온다.

왕궁리유적으로 들어선다. 유적전시관을 바라보며 들어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니 평지보다 높은 구릉 위에 왕궁리 5층석탑이 외롭게 서 있다. 이곳 21만6천862㎡에 이르는 넓은 터는 왕궁리유적으로 사적 408호로 지정됐다. 익산 왕궁리유적은 1989년부터 20년 이상 진행된 발굴조사결과 백제 무왕 때 왕궁으로 건립돼 일정기간 사용되다가 그 자리에 다시 사찰이 축조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찰유적의 중심선이 왕궁의 중심축과 사찰의 중심축이 일치한다.
18년 동안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지난 4월30일 개방된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서석탑. 미륵사지석탑은 우리나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규모 또한 가장 큰 탑으로 장중함과 단아한 면모를 함께 지니고 있다.

미륵사지가 산으로 둘러싸여 안온하다면, 이곳 왕궁리유적지는 사방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어 경쾌하다. 국보 제44호로 지정된 왕궁리 5층석탑은 왕궁에서 사찰로 변해가는 과정에 건립된 탑으로 전형적인 백제탑 양식이다.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과 많이 닮았다.

왕궁리유적으로 다가오는 주변의 들판과 미륵산을 바라보며 무왕의 기개를 생각한다. 백제를 부흥시키려했던 무왕의 계획은 아들인 의자왕 때 신라에게 패망함으로써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래서일까? 왕궁리유적지에서는 백제의 슬픔이 느껴진다.


※여행 쪽지

▶익산 무왕길은 익산지역에 남아있는 백제문화유적을 따라 걷는 길이다. 길을 걸으며 만나는 유적들은 대부분 무왕과 관련이 있어 길 이름도 ‘무왕길’이다.
▶코스 : 익산쌍릉→익산토성→미륵초등학교→미륵사지→구룡마을 대나무숲→도천마을→서동공원→고도리석불입상→왕궁리유적전시관→익산쌍릉(18.4㎞/6시간 30분 소요)
▶금마면소재지 근처나 미륵사지 근처에는 식당이 많다. 금마저수지 아래 물머리집(063-836-8558)은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한 집이다. 닭백숙도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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