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2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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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을 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지만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28)

  • 입력날짜 : 2019. 07.09. 18:23
偶吟(우음)
남명 조식

선비의 사랑이란 범 가죽 사랑이라
생전엔 미움으로 죽이고 싶겠지만
죽은 뒤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사람들
人之愛正士 好虎皮相似
인지애정사 호호피상사
生前欲殺之 死後還稱美
생전욕살지 사후환칭미

시인도 우연하게 시를 읊었던 모양이다. 남명의 성리학은 경의(敬義)를 배움의 바탕이라 하겠는데, 마음이 밝은 것을 ‘경’(敬)이라 하고 밖으로 과단성 있는 것을 ‘의’(義)라 했다. 이러한 주장은 바로 ‘경’으로써 마음을 곧게 해 수양하는 기본으로 삼고 ‘의’로써 외부생활 즉, 하학(下學)·인사(人事)를 처리한다는 의리철학을 표방했다. ‘사람들이 선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마치 범의 가죽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살아 있을 땐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지만’(偶吟)으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남명(南冥) 조식(曺植·1501-1572)으로 조선 중기 학자다. 모든 벼슬을 거절하고 오로지 처사로 자처하며 학문에만 전념했던 인물이다. 이와 같은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1551년 오건에 이어 정인홍, 하항, 김우옹, 최영경, 정구 등 많은 학자들이 찾아와 학문을 배웠던 것으로 전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사람들이 선비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 마치 범의 가죽을 사랑하는 것과 같기는 하네 // 살아 있을 때는 마치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지만 / 죽은 뒤에는 오히려 그를 아름답다고 칭찬한다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우연히 읊다]로 번역된다. 이원적이고 역설적인 시심을 만난다. 시인은 퇴계와 더불어 영남 사림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임에도 우연하게 시 한 수를 읊었다. 촌철살인과 같은 한 마디 절규의 소리를 듣는다. 사대부들이 높은 자리에 앉아서 상전처럼 부리고 시키면서 착취적인 선도적 역할을 해서 ‘예…, 예…’를, 뒤에서는 욕설의 대상이 됐다. 그렇지만 죽은 뒤에는….

시인은 이런 점에 착안해 서민들이 앞에서는 선비를 사랑하기를 범의 가죽이나 황금 사랑한 것처럼 한다는 시상의 주머니를 만지작거린다. 선비를 사랑하기를 범의 가죽을 사랑하는 것과 같이 알뜰하게 굽실굽실 사랑한다고 했다. 상전에게 극진하게 아부하고 앞에서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한다는 뜻일 게다.

이처럼 화자는 벼슬아치인 선비들을 미워하지만 죽은 뒤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칭송한다는 시상이다. ‘살아 있을 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하지만, 막상 죽은 뒤에는 오히려 아름답다’고 칭찬한다고 했다. 지조 있는 선비들을 그 살아생전에는 헐뜯지만 죽은 뒤에는 그 이름이 남는다는 메시지 같은 비유그릇에 담았다.

※한자와 어구

人之: 사람들이. ‘之’는 주격조사로 쓰였다. 愛: 사랑한다. 正士: 옳은 선비. 好虎皮好虎皮: 범 가죽을 좋아함. ‘虎死留皮’ 고사를 인용하였음. 相似: 서로 -같이 하다. // 生前: 생전. 살았을 적에는. 欲殺之: 죽일 것 같이 하다. 死後: 죽은 후에는. 還稱美: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다.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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