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1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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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은한 향기 속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네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31)

  • 입력날짜 : 2019. 07.30. 18:11
絶句(절구)
청련 이후백

가랑비 내리며 돌아갈 길 잃었는데
나귀 타고 가는 길 바람이 길을 닦고
들매화 피어 있어서 그만 넋을 잃었네.
細雨迷歸路 騎驢十里風
세우미귀로 기려십리풍
野梅隨處發 魂斷暗香中
야매수처발 혼단암향중

절구시를 쓰면서 절구를 붙이고 있다. 시제 붙이기가 어색했던 모양이다. 아니다. 시를 먼저 써놓고 ‘청련’(靑蓮)의 ‘기백’(氣白)을 담은 ‘후백’(後白)인양 바쁜 걸음을 내밀치고 출근하기에 바빴던 모양이다. <그랬었다면 퇴근 후에 한 번 더 읽고 퇴고라도 하면서 다듬는 다음 세제를 생각해 보시지 않고>라는 한 마디쯤을 보내면서. ‘가랑비가 주룩주룩 내려 돌아갈 길을 잃었는데, 나귀 타고 가는 십리 길에 바람 분다’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은은한 향기 속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네(絶句)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1520-1578)으로 조선 중기 문신이다. 1571년 문신정시에 장원해가자가 됐고, 1574년 형조판서에 특진됐던 초고속 승진 케이스다. 이조판서·양관제학을 지냈고, 1578년 호조판서로 재직 중 졸했다 한다. 저서로는 [청련집]이 있고,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가랑비 주룩주룩 내려 돌아갈 길을 잃었는데 / 나귀 타고 가는 십 리 길 바람이 부는구나 // 가는 곳 마다 들매화가 늘어지게 피어 있는데 / 은은한 향기 속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네]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절구 한 수를 지으면서]로 번역된다. 시제를 [절구]라고 붙였다면 ‘도중즉사’ 혹은 ‘즉사’라는 시제로 보고자 하는 뜻도 결코 무리는 아닐지 모르겠다. 기승전결 절구형식으로 시를 쓰면서도 굳이 [절구]하고 했기 때문이다. 시적인 흐름은 길 가는 도중에 자연의 풍광에 취하면서 시심의 흥취를 발휘하고 있다.

시인은 가랑비를 맞고 나귀를 타고 가는 도중에 했던 일과 봤던 일에 대한 옹알거리는 시심덩이를 매만지고 있다. 가랑비가 포근하게 내려서 내려 돌아갈 길을 잃었다고 하면서 나귀를 타고 가는 십 리 길에 바람이 불었다고 했다. 선경의 시상은 평범하지만 후정으로 이어지면서 시인의 깊은 심회를 읊으려는 속셈은 알게 되지만 결구에서는 촌철살인과 같은 반전을 시도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이겠다.

화자는 길가에 피어 있는 자연산 들매화를 보면서 그 향기에 푹 취했음을 반전이란 굽은 자리에 놓고 있다. 가는 곳 마다 들매화가 늘어지게 피어 있었는데, 은은한 향기 속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고 했다. 기대했던 커다란 반전은 보이지 않았지만 들매화에 흠뻑 취한 시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한자와 어구

細雨: 가랑비 迷: 잃다. 희미하다. 歸路: 돌아갈 길. 騎驢: 말을 타다. 十里風: 십 리 길을. // 野梅: 들매화. 隨處: 가는 곳. 따르는 곳마다. 發: 피었다. 만발하다. 魂斷: 넋이 끊어지다. 暗香: 암향. 은은하게 풍기는 매화의 향기. 中: 가운데. 또는 길을 가는 도중에.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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