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2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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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락은 이미 끝났으나 정은 아직도 남았구나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32)

  • 입력날짜 : 2019. 08.06. 18:45
邸舍聞琴(저사문금)
서산대사 휴정

눈 익은 고운 손 어지러이 움직이고
가락은 끝났으나 정은 아직 남았는데
강가에 빛 반짝이는 봉우리 그려보네.
白雪亂纖手 曲終情未終
백설난섬수 곡종정미종
秋江開鏡色 畵出數靑峰
추강개경색 화출수청봉

어디엔가에서 은은한 거문고 소리가 들렸던 모양이다. 대사께선 그렇지 않아도 머리를 식히면서 깊은 사색에 빠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불사(佛事)도 그렇고 승병 전술 전열을 다듬어야 될 판도 그렇다. 그의 생각은 온갖 잡념이 깊었을 터인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은한 거문고 소리에 취해 그만 발길을 멈추면서 고운 선율에 한껏 취했으리라. ‘가을 강에는 거울 빛에 빤짝거리고, 푸른 봉우리 두어 개쯤 그려봤으면’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가락은 이미 끝났으나 정은 아직도 남았구나’(邸舍聞琴)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1520-1604)으로 조선 중기의 승려이자 승군장이다. ‘전등’, ‘염송’, ‘화엄경’, ‘원각경’, ‘능엄경’, ‘유마경’ 등 깊은 교리를 탐구하던 중, 깨달은 바 있어 스스로 시를 짓고 삭발해 숭인장로를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 고승의 깨우침을 얻었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눈 익은 고운 손을 어지럽게 움직이니 / 가락은 이미 끝나고 정은 아직 남았구나 / 가을의 강에는 거울 빛에 빤짝이고 / 푸른 봉우리 두어 개쯤 그려나 봤으면]이란 시상이다.

위 시제는 [사저에서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로 번역된다. 스님이라고 해서 아름다운 선율을 마다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은은하게 들려오는 가락은 때로는 애간장을 녹였을 것이고, 가슴을 섬뜩하게도 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나는 가락을 듣지 않고 염불에만 전념하고 있다’고 해도 귀는 그 먼저 아름다운 음악이나 구성진 가락에 쏠리고 있었으리.

시인은 거문고 한 가락에 귀를 쫑긋 세우고 흘러드는 가락에 정신을 놓지 않고 연주하는 당사자를 그려 보고 있다. 눈 익은 고운 손이 어지럽게 움직이나 했더니, 가락은 이미 끝났으나 그 정만은 아직도 남았다고 했다. 곡조가 끝났으나 귓가에 울려 퍼지는 그 정만은 사저 주변에 남아서 감정을 가눌 길 없음을 시상으로 가득 채웠음을 알겠다.

화자는 거문고 소리를 들으며 연주를 잘하고 백아를 연상하면서 자신은 종자기가 되는 것처럼 강과 봉우리라는 경관을 그려보고 있다. 가을의 강에는 거울 빛이 저리도 빤짝이고, 푸른 봉우리 두어 개쯤을 가만히 그려 보겠다는 속 깊은 자기 의지를 밝히고 있다. 가만히 들으면 ‘얼-쑤’하는 추임새도 들춰가면서….

※한자와 어구

邸: 집 혹은 묵다. 舍: 집. 머무는 곳. 白雪: 하얀 눈. 亂: 어지럽다. 纖手: 고운 손. 부드러운 손. 曲終: 곡이 끝나다. 곧 가락을 다 연주하다. 情未終: 정만은 마치지 않다. 정은 아직 남아있다. // 秋江: 가을 강. 開鏡色: 거울 빛에 반짝이다. 畵: 그리다. 出: 나오다. 數: 두어 개쯤. 靑峰: 푸른 봉우리.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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