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9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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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에 되새겨본 ‘경찰정신의 뿌리’
진점옥
진도경찰서장

  • 입력날짜 : 2019. 08.19. 19:28
100년 전 상해 임시정부에 ‘문지기를 시켜 달라’며 찾아 온 조선인이 있었다. 미천한 백정(白丁)의 ‘백’과 범부(凡夫)의 ‘범’을 따 평범한 시민이라는 ‘백범’을 호로 삼고 시민 모두가 애국심을 가지길 기원했던 사람. 당시 임시정부 내무총장 도산(島山) 안창호(安昌鎬) 선생은 3·1운동 후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망명한 44살의 독립운동가의 기개를 한 눈에 알아봤다. ‘우리나라가 독립국만 되면 나는 그 나라에 가장 미천한 자가 되어도 좋다’던 그는 뜻밖에도 경무국장(현 경찰청장)의 중책을 제안 받았다. “감당할 수 없는 자리다(백범)”, “왜놈 사정을 잘 아는 인재를 등용한 것이다(도산)”. 밀당 끝에 1919년 8월,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은 우리 역사상 1호 민주경찰인 임시정부 경무국장에 취임했다.

당시의 임시정부 경무국은 청사 경비뿐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보호, 일본군 정탐, 반민족행위자 처단 등의 임무도 함께 수행했다. 정·사복을 포함해 20여명의 인력이었다. ‘백범일지(白凡逸志)’에는 김구선생이 임시정부 경찰을 지휘하고 경찰의 기틀을 확립했던 경무국의 활약상이 상세히 실려 있다. 경찰 총수로서 큰 자부심을 가졌던 백범은 경무국장 시절 콧수염을 기르고 백색 정장과 구두 차림으로 찍은 사진도 남겼다. 그의 임정 초대 경무국장은 필시 백범 독립운동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선생이 1947년 ‘민주경찰(民主警察)’지 창간호에 남긴 “매사에 자주독립(自主獨立)의 정신과 애국안민(愛國安民)의 척도로 일하라”는 당부는 오늘 날까지 경찰정신의 뿌리가 되고 있다.

사실 일제강점기 경찰은 ‘순사’나 ‘하수인’의 이미지로 각인되었고 오랜 시간 대한민국 경찰을 짓눌러 온 주홍글씨였다. 그들은 조선총독부의 지휘 아래 독립운동가를 체포·고문하였고 오직 식민지 체제 유지에만 기여하는데 급급했다. 그러나 김구 선생의 임시정부 경찰은 달랐다. 교민과 독립운동가를 보호하고 친일파를 처단하는 경찰 본연의 임무를 수행했던 것이다. 그 활동은 임시정부를 지켜낸 힘이 되었다. 경찰청은 8월 12일을 ‘임시정부 경찰기념일’로 정하고, 경찰청사에 백범 흉상을 설치했다. 대한민국 경찰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다는 선언이었다. 백범 흉상의 표석에는 ‘정부의 문지기가 되는 것이 꿈일 만큼 가장 낮은 곳에서 겨레를 섬겨 민주경찰의 표상이 되었다’라고 쓰였다.

올해 광복절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에 맞아 그 의미가 크다. 또 우리 경찰 역사의 1호 민주경찰이 탄생한지 10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 안팎 사정은 100년 전에 비해 그리 녹록치 않다. 그 때도 강대국은 제국주의를 앞세워 자국 우선이었고,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에 더하여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고, 일본은 불법 강점에 대한 사과는 커녕 급기야 우리나라에 경제보복을 선언하고 나섰다. 광복절을 맞은 한국은 다시금 생존의 길을 모색할 전환점을 맞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 에너지를 결집시키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며, 미래를 확신할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의 뼈아픈 역사는 어떤 교훈을 일깨우고 있는가? 백범 김구선생이 일찍이 설파한 자주독립(自主獨立)과 애국안민(愛國安民)에서 그 답을 찾아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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