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2일(화요일)
홈 >> 기획 >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전북 무주 구천동 ‘어사길’
구천동 맑은 물에 마음 씻으니 백련이 피네

  • 입력날짜 : 2019. 08.20. 18:57
28㎞에 이르는 구천동계곡은 깊고 그윽하며, 바위와 폭포·담소가 어울려 아름다워진다.
날씨가 무덥다 못해 짜증이 날 정도다. 푸른 산과 계곡, 바다가 그립다. 사람들이 서둘러 산으로 바다로 떠난다. 우리도 더위를 식히려 전북 무주 구천동으로 향한다. 울창한 원시림과 깊은 계곡을 이룬 무주 구천동은 머릿속으로 떠올리기만 해도 시원하다.

대전-통영고속도로를 따라 달리는데, 덕유산 향적봉에서 남덕유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유장하게 펼쳐진다. 덕유산의 대표적인 계곡인 구천동계곡은 암벽을 뚫어 만든 나제통문(羅濟通門)에서 백련사까지 28㎞에 이른다. 우리의 선조들은 예로부터 굽이굽이 흐르는 구천동의 아름다운 33곳을 지정해 ‘구천동 33경’이라 했다. 구천동 33경 중 백련사로 가는 탐방로를 따라 걸어가면서 만날 수 있는 곳은 제15경부터다.
백련사는 구천동 최상류 해발 920m 깊은 산속에 연꽃처럼 피어 부처의 향기를 내뿜고 있다.

구천동 제15경 월하탄(月下灘)이 시원한 폭포소리와 함께 우리를 맞이한다. 5m 정도의 높이에서 두 줄기의 폭포수가 쏟아지는 모습이 달빛아래에서 하얀 날개를 펴고 춤추며 내려오는 선녀 같다. 원시림으로 뒤덮인 숲과 티없이 맑게 흐르는 계곡은 금방 세상시름을 잊게 해준다.

월하탄을 지나자 ‘구천동 어사길’이라 쓰인 입구가 나타난다. ‘구천동’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학자 갈천 임훈이 덕유산을 오르고 쓴 ‘향적봉기’라는 기행문에 9천명의 승려들이 수도하던 곳이라고 기록한데서 유래됐다. 구천동 어사길은 백련사까지 이어진다. 이 길에는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에 얽힌 일화가 전해진다. 암행어사 박문수가 구천동에서 자신의 위세만을 믿고 주민들에게 횡포를 부리던 자들을 벌하고 사람의 도리를 세웠다고 해 ‘어사길’이라 했다.

구천동계곡 옆으로 바짝 붙은 숲길에서는 매미들이 요란하게 울어댄다. 고요하게 흐르는 물줄기는 잘 다듬어진 바위 사이를 돌고 돌면서 흘러간다. 물은 서두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흐르기를 멈추지도 않는다. 흐르다 지치면 담이나 소에 머물며 잠시 쉬었다 갈 뿐이다.
옛 선인들은 비파담으로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옥류에 감탄했다.

인월담을 만난다. 너른 반석 사이로 폭포수가 부챗살처럼 쏟아진다. 폭포수는 작은 담에 담겨진다. 잠시 흐르기를 멈췄던 물줄기는 다시 반석을 적시며 유유히 흘러간다. 반석 위로 흐르는 물은 반석을 거울처럼 맑게 비춰 명경지수가 된다. 물위에 달이 도장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비췬다는 의미로 인월담(印月潭)이라 불렀다.

구천동계곡은 갈수록 깊고 그윽하며, 바위와 폭포·담소가 어울려 아름다워진다. 매끄러운 반석 위를 흐르던 물줄기가 몇 차례 굽이치면서 작은 폭포를 만들어내고는 비파 모양의 넓은 소를 이룬 비파담에서 한참 동안 발을 떼지 못한다. 에메랄드빛을 띤 비파담의 색깔이 물속 깊이를 가늠케 해준다. 하늘에서 내려온 일곱 선녀가 이 담에서 목욕한 후 아름다운 반석 위에서 비파를 뜯었다는 전설도 그럴 듯하다.

구천동을 탐승하던 옛 선인들이 비파담으로 미끄러지는 옥류에 감탄하고, 잠시 쉬어 차를 끓여 마시면서 심신의 피로를 풀었다는 다연대와 두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이 합류해 쏟아내는 폭포수가 담을 이룬 구월담은 붉게 물든 가을단풍과 어울려 더욱 우아해지는 곳이다.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구천폭포는 층암을 타고 쏟아지는 2층 폭포다.

탐방로 곳곳에는 이름도 예쁜 바위와 담들이 줄줄이 펼쳐진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무 소리와 계곡의 물소리가 거문고를 타는 듯하다는 금포탄, 호랑이의 서글픈 노랫소리가 들린다는 호탄암, 울창한 수림과 기암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청류계 같은 비경은 그중 일부일 뿐이다.

이끼 덮인 푸른 바위에서는 계곡의 원시성이 물씬 풍겨진다. 골짜기가 깊어질수록 나의 마음도 더욱 깊어진다. 길은 구불구불 이어지고, 연녹색 잎들은 길 위에 산뜻한 수채화를 그려놓았다. 여름에 피는 산수국과 비비추 꽃과 눈을 맞춘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 야생화와 눈을 맞출 때 나는 그들과 친구가 된다.

안심대에서 오솔길이 끝나고 어사길은 백련사로 통하는 임도와 합쳐진다. 안심대에는 생육신으로 익히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선시대 생육신중 한 사람인 김시습이 관군의 추적을 피해 각지를 떠돌다 덕유산에 이르렀다. 관군을 따돌리고 구천동을 찾은 김시습은 한 여울목에 이르러서야 잠시 발을 멈추고 쉬었다. 바위에 기대어 한시름을 놓고 쉬었던 이곳을 사람들은 김시습이 안심하고 쉬었다 해서 안심대라 이름 지었다.
연화폭포. 이 폭포 위에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이속대가 있다.

신양담·명경담을 지나자 구천폭포가 기다리고 있다.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구천폭포는 층암을 타고 쏟아지는 2층 폭포다. 중생들이 사바세계인 속세를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이속대를 지난다. 이속대에서 속세의 떼를 벗고서야 ‘덕유산 백련사’(德裕山 白蓮寺)라 쓰인 일주문을 통과하게 된다. 일주문에서 5분 가까이 더 올라가니 하늘이 트이면서 계단이 나타난다. 그 계단 위에 천왕문이 있고, 다시 계단을 오르자 우화루다. 우화루를 통과해 또 하나의 가파른 계단을 오르니 대웅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선사가 은거해 있었던 이곳에 백련이 피어나 그 위에 절을 짓고 백련암이라 했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진다. 백련사는 구천동사, 백련암 등으로 불리어지면서 조선 말기까지 중수를 거듭해 오다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버렸다. 폐사지로 남아있던 터에 1960년대 들어 복원불사가 이뤄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련사는 70리에 이르는 구천동 최상류 해발 920m 깊은 산속에서 연꽃처럼 피어 부처의 향기를 내뿜고 있다. 구천동관광특구에 있는 구천동 주차장을 기준으로 하여도 6㎞를 걸어서야 도착할 수 있을 만큼 깊은 산 속이다. 대웅전 앞에 서 있으니 사찰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거대한 연잎 같다.

대웅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를 올리며 탐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나 자신을 참회한다. 대웅전 한 쪽에서 스님이 불기를 닦고 있다. 그릇에 낀 때를 닦듯이 내 마음도 부단히 닦을 일이다. 대웅전에서 예불을 하고 법당 옆에서 석간수 한 모금을 마신다.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내 몸을 정화시켜주는 듯하다.

백련사에서 2.5㎞ 산길을 오르면 덕유산 향적봉이다. 덕유산 산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백련사는 몸도 마음도 쉬어가는 곳이다. 어사길은 백련사에서 끝나지만 우리는 구천동관광특구주차장까지 되돌아가야 한다. 길은 구천동 물길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길이 물 흐르듯 흘러가고 나도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여행쪽지

▶무주구천동 어사길은 울창한 숲과 티없이 맑은 구천동계곡을 따라 걷는 길로, 한여름에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고, 봄철에는 연둣빛 신록이 아름답다. 계곡물에 비췬 가을 단풍은 시적 감흥을 일으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코스 : 구천동관광특구주차장→어사길 입구→인월담→구월담→안심대→백련사(6㎞, 왕복 12㎞/4시간 소요)
-출발점 내비게이션 주소 : 무주구천동관광특구주차장(전북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1로 167)
▶무주구천동관광특구에는 식당들이 많다. 별미가든(063-322-3123)의 40가지에 이르는 산채나물에 수육, 청국장, 더덕구이를 곁들인 산채정식이 먹을 만하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