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24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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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이름으로 세상에 고하다]‘나미야 비밀상담소’에 날아온 진로와 취업에 대한 마음편지
“실패해도 한심하지 않은 세상 만드는 것이 우리의 사명”
고정된 틀 벗어나 자신앞에 펼쳐진 ‘열린 가능성’에 대한 과감한 도전
현실과 이상 속 ‘비정상’의 ‘정상화’…삶의 주역으로 당당히 살아가야

  • 입력날짜 : 2019. 09.05. 18:08
공익 프로젝트 ‘나미야 비밀상담소’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사연자가 보내는 다양한 마음편지들을 자원활동가인 나미야 할아버지들이 정성을 담아 답장을 해주는 프로젝트다.

그중 진로와 취업에 대해서도 다양한 편지가 들어오는데 그 내용은 몇 가지 방향으로 수렴한다. 진로에 대한 편지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진로로 삼아야 할지 혹은 현실적으로 안정성을 우선으로 진로를 잡아야 할지에 대한 내용으로 나뉜다. 취업의 경우 “내가 과연 취업을 잘 할 수 있을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그만두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해야 할까?”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든 취업에 대한 고민이든 그 근본에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는 경기침체, 고용불안에 대한 뉴스와 함께 안정적 혹은 더 많은 연봉을 위해 뛰어드는 경쟁이 우리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필자가 받은 마음편지 중에 인상 깊은 사연이 있다.

‘방금 또 자해를 했습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다. 사연자는 학업과 공무원 시험을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사연자의 수면 시간은 평균 4시간. 하지만 사연자는 공무원 시험 당일 참석하지 않았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합격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연자는 자해를 한다. 그 순간은 자괴감에서 벗어나 면죄 받은 기분에 지속적으로 자해를 하게 된다. 사연자는 자취를 한다. 가족도 없는 타지에 휴학과 공시준비로 인해 친구가 없다.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누군가를 만나도 자취방으로 돌아오면 그 빈자리로 인해 더 외롭다. 허투루 쓰는 시간은 하나도 없는데 왜 자신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는지.

단지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인데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왜 이렇게 힘든 건지 토로하는 사연이었다.

사연자가 상세히 묘사하는 자해 장면이 내겐 너무 슬펐다. 피를 본 다음 무덤덤하게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였다는 표현이 사막의 모래를 씹는 것 마냥 텁텁했다. 생각보다 많은 사연자들이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비정상적인 점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 소개한 사연자 또한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자해를 그만 둘 수 없던 것일까? 전문가가 아니기에 미뤄 짐작을 해본다면 자신의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불안해소욕구가 아닐까?

사연자는 부모님의 강한 권유로 공무원에 뜻을 두게 됐다. 사연자가 생각하기에도 괜찮을 것 같아 시작하게 됐다.

필자 또한 그랬듯 진로와 취업에 대해서 현재 청년 세대의 대부분 부모님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뜻에 따랐을 것이고 누군가는 나름의 이유로 다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필자의 경우 부모님께서는 경찰 공무원이 되기를 원했다. 아니, ‘사실 그냥 공무원이 되길 원했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그 이유로는 정년이 확실히 보장이 된다는 이유와 연금을 받아 안정적인 노후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써 안정을 보장하는 진로·직업이 공무원 뿐이라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진로·취업에 대해 보낸 마음편지를 살펴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안정적 혹은 관심사 그 둘 중 하나의 선택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재밌는 부분은 사연자들이 내놓은 진로·직업은 각각 한가지씩이라는 점이다.

수많은 편지들 중에서 두 개를 넘어가는 사람이 아직까지는 없었다. 내가 잘하고 적성에 맞는 관심사를 고르고 골라 하나씩 선택한 건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지금까지 진로와 취업에 대해 하나의 바리에이션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청년에게 현실적으로 마련돼야 할 것은 ‘열린 가능성’이다.

지금까지 지식을 주입하는 방식의 교육은 시대적으로 들어맞았다.

인터넷이 발달되기 전까지는 지식은 지식인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구글신이 보우하사 지식은 인터넷에 모두 보관돼 있다. 지금 시대에 균형적으로 필요한 것은 다양한 진로에 대해 경험해 볼 수 있는 교육이다.

우리의 불안은 지금과 같은 시대에 개인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몇 가지 없다는 것에서 시작된다. 진로는 한 번 정하면 대부분 바꾸지 않는다. 취직 또한 자신의 진로에 맞게 선택하며 완전히 다른 직종으로는 대체적으로 이직하지 않는다.

관성적으로 인간은 자신과 익숙한 것을 찾는다. 필자의 아버지는 경제활동으로 생의 대부분을 농사에 전념하셨다. 나이가 들어 몸의 이곳저곳이 고장을 일으킨다. 게다가 농약값이며 일꾼 품삯을 주고 나면 적자일 때도 부지기수다. 아버지에게 이제 농사는 모두 접는 것이 어떤지 물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할 줄 아는 것이 이것뿐인데 농사를 접으면 무엇으로 벌어먹냐?”는 것이었다.

필자가 상상하기에 사회적으로 실험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는데 임의로 지은 명칭은 업무 선택적 노동이다.

노동을 세분화해 일하고 싶은 부분만 일하는 것과 일하고 싶은 만큼만 일하는 것이다. 당연히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 적게 가져가면 된다. 중요한 것은 여러 곳에 소속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사측에서 따지는 가성비는 한 사람에게 최대한 적은 임금을 지급하고 최대한 많은 일을 시키는 것이다. 생각을 뒤집어 사측은 여러 사람에게 최대한 일을 나눠 주고 각 개인은 여러 회사에서 제공하는 업무를 선택적으로 하고 싶은 만큼만 받는 것이다.
박준성 <청년문화허브 간사>

당장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구멍도 많지만 상상인데 어떠하랴. 미래에는 누군가 실현시켜 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와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회적으로 청년들의 취업 이후 월급의 사용비율을 보면 의·식·주가 가장 높다. 청년만이 아니라 경제활동을 하는 계층들 대부분이 그럴 것으로 생각된다. 의·식·주가 불안하면 사회가 흔들린다.

현재를 보라.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안정적인 의·식·주를 위해 안정적인 노동에 집착해야 하는 것일까? 위에서 소개한 사연자의 말 중 폐부를 찌르는 것은 “계속 실패하니 내가 한심하고 벌레 같아 보이고 부모님께는 한없이 죄송하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생각한다. 우리의 실패는 세상의 실패라고, 실패해도 한심하지 않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우리의 몫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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