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3일(토요일)
홈 >> 기획 > 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

[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 <15>영암 엄길마을
철암산 매향비가 지켜주는 살기 좋은 마을
800년 수령 느티나무 마을 수호신 당산나무로 모셔 정월 14일 ‘당산제’
‘불’ 월출산 ‘물’ 학파저수지 연결돼 이환의·전석홍 등 인물 배출한 곳
엄길리 암각 매향비 보물 제1309호 향촌공동체 조직 실상 반영한 금석문

  • 입력날짜 : 2019. 10.23. 18:59
엄길마을 수호신 느티나무.
영암군 서호면에 자리한 엄길마을. 마을에 들어서면 커다란 나무 한그루가 먼저 반겨준다. 그 자태를 보아하니 어른 여섯 명은 모여야 안을 수 있을 듯하다. 800년 된 아름다운 느티나무다.
마을의 수호신인 느티나무엔 재미난 이야기가 전해온다.

800년 전 한 여인이 아들의 과거 급제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나무 밑에서 매일 빌었다고 한다. 허나 아들이 과거에 낙방하자 이 나무가 고사됐는데, 이듬해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자 다시 살아나서 아들의 과거 급제를 축하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당산나무로 받들어 모시면서 매년 정월 14일에 당산제를 거행해오고 있다.

◇불·물을 갖춘 길지···인물도 많아

엄길마을의 이름은 입향조와 관련이 있다. 강진군 태동에서 전승무·승문 형제가 엄길에 기거한 이후 후손들이 문과와 무과에 다수 급제했다.

이에 후손들이 입향조를 존경한다는 의미에서 존경할 엄(嚴)과 전승무·승문 형제의 아호인 길촌(吉村)·길림(吉林)의 길(吉)를 따서 엄길(嚴吉)이라 불렀다. 하지만 ‘엄길’에서 존경할 ‘엄’ 자는 가릴 엄(奄)자로 바뀌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엄 자가 바뀐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마을 주민들은 엄길마을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큰 배가 마을 앞까지 들어오는 서호강이 있었으니 살기 좋은 곳이라는 증거라 말한다. 풍수적으로도 불의 형국인 월출산과 은적산이 마주보는 가운데에 물인 학파저수지가 있어 이환의·전석홍 등 인물도 많이 난 곳이라 말할 수 있다.

엄길마을에서 달 뜨는 산이라는 월출산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달이 월출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는데, 그 모습이 비친 학파저수지는 환상 그 자체다.

◇매향비를 아시나요?
물레방아가 있는 연못. 보호수 회화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수래정. 지석묘군.

흔히들 엄길마을을 두고 매향비가 지켜주는 고장이라고 한다.

엄길리 철암산 바위에 새겨져 있는 매향비.

매향비는 해안 지역에서 보이는 미륵 신앙 유적이다. 매향비는 향나무를 묻고 그 사실을 기록한 비문이다. 매향(埋香)은 향나무를 모아 개펄에 묻는 의식으로, 바닷물에 오래 담가둔 향나무가 침향이 되면 스스로 떠오르는데 어지러운 세상을 구원할 미륵의 탄생을 바라는 민중의식이다. 먼 옛날 현실적 위기감에서 시작된 순수한 민간신앙이다.

엄길리 암각 매향비는 2001년 보물 제1309호로 지정됐다.

1344년(충목왕 원년)에 세워진 매향기록으로, 7부 능선 속칭 ‘글자바위’로 불리는 바위의 한쪽 작은 틈새에 새겨져 있다.

엄길리 일대는 영암만의 만입부(현재는 간척지)로서 은적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바닷물과 마주치는 지점이다.

이 영암만을 사이에 두고 구림천과 마주보는 천혜의 양지다. 이 글자바위에는 옛날 보물(금)을 묻어 놓고 그 장소를 바위에 적어 놓았으나 해독할 수가 없고, 또 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물을 캐면 액살이 끼게 돼 화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실제 ‘왕(王)바위’ 또는 ‘금바위’(金바위 혹은 禁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산 밑에 있어 그 밑을 파려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마침 천둥, 벼락이 내려 겁을 먹고 중단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 매향비문은 고려말-조선초의 매향양식과 지방의 민간 신앙을 살피는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향촌공동체 조직의 실상을 반영하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엄길 매향비가 전남의 매향비 중 가장 앞서는데 영암 사람들이 가장 깨어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상상해 본다.

엄길마을엔 전라남도 기념물 제82호인 영암 엄길리 지석묘군이 있고 모두 18기의 고인돌이 남아 있다.

◇고인돌이 금바위?

선사시대부터 사용된 무덤인 고인돌.

엄길마을 서쪽에 지름이 거의 6m에 이르는 거대한 고인돌 2기를 중심으로 18기의 고인돌이 북서-남동 방향으로 2열을 이루며 넓게 분포하고 있다.

전하는 이야기로는, 뒷산에 매향비가 있는데 비문을 해독하면 “고인돌 아래의 금덩어리를 찾을 수 있다고 해 금바위(金岩)라고도 하고, 고인돌에 대한 접근을 막기 위해 금바위(禁岩)라고도 한다”라고 한다.

마을에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듯 다양한 향토유물들이 존재한다. 마을회관 바로 옆에 위치한 오래된 정자인 수래정은 전광정, 전광택, 전영택, 전종행 등이 강학하던 곳으로 후손들이 이들을 추모하며 매년 복날이면 문중어른들과 함께 마을의 발전과 앞날을 토론했던 곳이었다.

또 수래정 바로 앞에는 장동사라는 사당이 있다. 장동사는 조선 숙종 3년(1677년)에 장천리의 장동에 창건돼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병조판서 전몽성을 배향했던 곳이다. 이후 고종 5년에 폐쇄됐다가 광복이후 엄길마을로 이전돼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암각매향명. 하늘에서 바라본 엄길마을 전경.

◇공동체 문화가 살아 있는 마을

엄길마을은 지금도 공동체 정신이 남아 있는 곳이다.

주민들은 정월대보름, 복날 등 특별한 날이 되면 모두가 함께 모여 축하를 하고 복달임을 하고 있다.

매년 정월대보름이 되면 정자나무에서 마을과 주민들의 무사안녕과 한해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또 마을주민들의 환갑과 칠순잔치를 마을주민들이 지내준다고 한다. 매년 환갑과 칠순을 맞은 사람들이 많은 해에는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모아 음식을 마련해 생일을 맞은 사람들을 축하하는 잔치를 베풀어 주고 있다. 이 어찌 화목한 마을이 아니겠는가.

주민들은 도시민들을 초청해 농촌을 체험하고 숙박도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마을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숙박의 장소도 제공하고 여러 가지 농촌마을에서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써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어느 곳보다 마을주민들이 가족처럼 오순도순 정답게 지내고 있어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자부하는 고장.

앞으로도 특별히 바라는 것은 없지만 지금 이대로 마을주민들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길 바라며 한해 농사도 병충해를 입지 않고 풍년농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최지영 자유기고가·영암=이봉영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김영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