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15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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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 <16>무안 상동마을
때 아닌 눈이라도 내린 듯 하얀 산자락
매년 찾아오는 백로와 왜가리 주민·새 50년 넘게 함께 지내
서식지 1968년 천연기념물로 농요 ‘무안 상동 들노래’ 유명

  • 입력날짜 : 2019. 10.28. 18:21
백로
저만치 보이는 산자락이 하얗다. 때 아닌 눈이라도 내린 것 같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하얀 새들이 내려앉아 있다. 산자락을 백로와 왜가리들이 통째로 차지하고 있다. 무안군 무안읍 용월리에 있는 청용산이다. 그리고 마을은 이른바 ‘학마을’로 불리는 상동마을이다. 5월 어느 날, 상동마을의 풍경이다.

◇정답게 지저귀는 저 새는 내 마음 알지

서해안고속도로 무안 나들목에서 무안 방면으로 1.5㎞를 달리면 ‘백로·왜가리 집단서식지’라는 입간판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표지판을 따라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무안 나들목에서 5분 거리다.

상동마을에 새들이 무리지어 찾아든 것은 1960년대 중반부터였다. 안내판에는 ‘8·15 해방을 전후해서 학이 한두 마리 모여들어 둥우리를 틀기 시작했다’고 적혀 있다. 그 후 뜸하다가 1966년 청용산을 중심으로 백로 2천여 마리와 왜가리 500여 마리, 해오라기 수십 마리가 찾아들면서 천연 번식지를 이루게 됐다고 씌어 있다. 주민과 새가 어우러져 같이 산 지 50년이 넘었다.

이곳에서의 새 구경은 일반적인 철새 탐조와 많이 다르다. 새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서 볼 필요가 없다. 새들은 사람의 움직임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주민과 친해진 덕분이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볼 때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다.

상동마을은 환경친화마을이고 학마을이다.
새서석지와 백로전망대. 연방죽의 둥근섬. 상동들노래비. 상동마을전경

사실 새들의 서식지와 마을이 바짝 붙어 있다. 마을 바로 앞이 청용산이고 용암저수지다. 그럼에도 마을 주민들이 새들을 아끼고 돌봤다. 주민은 새들이 싫어할 만한 일도 하지 않았다. 새에 해를 끼칠만한 사람들의 접근도 막았다.

무리 지어 사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소음 수준이다. 수백 마리의 개구리가 한꺼번에 우는 것 같다. 새들의 배설물도 상당하다. 하지만 주민들은 개의치 않았다. 신경 쓰지 않을 뿐 아니라 불편하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상동마을 주민들은 백로와 왜가리를 아끼며 보호한다. 행여 새들이 놀랄까 봐 이들은 큰 소리도 내지 않는다. 차량의 경적도 울리지 않는다. 새와 함께하는 생활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자연스레 백로와 왜가리의 서식지가 마을의 상징이 됐다.

마을 부녀회에서 담그는 전통 장류의 상표도 ‘학동네 전통장’이다.

학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다.

마을 주민들은 백로와 왜가리를 길조로 여기고 있다. 이 새들이 많이 찾아들면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 또 마을의 액운을 없애고 마을을 부흥시켜 준다고 믿으며 새들을 보호하는 데 온 정성을 다하고 있다. 외지인들의 청용산 출입까지 통제한다.

◇법적으로도 보장받은 백로의 땅

백로와 왜가리는 법적으로도 보장을 받았다. 새들이 사는 이 서식지는 천연기념물(제211호)로 지정됐다. 1968년부터다. 청용산이 백로와 왜가리의 땅이라는 걸 인정받은 셈이다. 면적은 3만4천360㎡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해서 왜가리가 먼저 찾아들고 이어 백로가 춘분에 맞춰 강남에서 날아와 알을 낳고 번식을 하다 10월에 동남아 지역으로 다시 이동한다는 것. 조류학계의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무안군은 이곳을 친환경 생태마을로 지정하고 주변 환경을 정비해 관망대와 공동 수세식 화장실을 마련하고 관광객들의 탐조 편의를 돕고 있다. 덕분에 상동마을은 생태도시 무안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현재 이곳은 1천여 마리가 서식하는 백로와 왜가리의 군무를 관람하기 위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조류학자, 환경운동가 등 생태전문가들의 관심을 꾸준히 받고 왔다. 상동마을을 배경으로 연극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바로 ‘학마을 연가’다.

일제 강점기 피해의 역사와 평화로운 학마을을 대비시켜 연극의 사회성에 주목한 작품이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백로와 왜가리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생명공동체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무안 상동 들노래를 아시나요

상동마을은 백로와 왜가리 집단 서식지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무안 상동 들노래’도 가히 기가 막히다. 논이나 밭에서 농사에 따른 일을 하며 부르는 농업노동요를 농요라고 한다. 우리나라 농업노동요는 각 지역의 특색을 잘 반영하고 있으면서 종류 또한 다양하고 풍부해 한국 민요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무안 상동 들노래도 농요의 하나다. 들에서 일하면서 부르는 소리다.

모찌기, 모심기, 논매기, 풍장 등 마을 공동 작업을 하면서 부르는 들노래로 영산강 유역을 대표하는 들노래 가운데 하나이다. 무안 상동 들노래는 2006년 전남도 무형문화재 제41호로 지정됐다.

무안 상동 들노래는 영산강유역 ‘긴소리권’에서 전승되는 들노래다. 영산강유역을 대표하는 들노래답게 체계적인 구성이 돋보인다. 모찌는 소리-모심는 소리(긴상사소리-잦은상사소리)-논매는 소리(무삼소리-긴소리-긴들래기소리-잦은들래기소리)-풍장소리(제호소리)의 구성은 체계적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 노래 중에서 특히 ‘무삼소리’와 ‘긴소리’는 길고 유장한 영산강 유역 들노래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

목청이 좋은 선소리꾼이 길고 구성진 가락을 뽑으면 여러 사람이 제창(齊唱)으로 후렴구를 받아넘긴다. 상동 들노래는 유장하면서도 힘차고 굳센 남성노동요의 역동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주민들은 힘겨운 노동으로 인한 고달픔을 들노래를 부르며 달랬을 것이다.

무안 상동 들노래를 전수하고 보전하고자 주민들은 무안상동들노래보존회를 자체적으로 만들었다. 보존회는 제28회 남도문화제 으뜸상과 개인연기상을 수상(2001년)하고 제43회 한국민속예술축제 공로상을 수상(2002년)하는 등 다양한 공연을 해 오고 있다. 마을 주민들은 어린 시절부터 동네 어른들과 들판에서 일을 함께 하는 과정에서 들노래를 자연스럽게 익혔다. 당시에는 어른들이 ‘전장 보낸다’고 해서 다른 논에서 논을 매고 있는 사람들에게 보내 노래를 부르도록 시켰는데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소리꾼의 능력을 키우게 됐다.

/최지영 자유기고가·무안=전양태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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