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2일(금요일)
홈 >> 기획 > 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

[남도의 명품마을을 찾아서]<19>장성 황룡마을
‘황룡’ 품은 고장…이름 걸맞는 걸출한 인물 배출
새낙굴 기슭에 자리잡은 요새지 ‘옐로우시티’의 출발점 황룡 전설
김황식·김영하 등 광산김씨 일가 ‘문숙공파 종회각’도 마을의 자랑

  • 입력날짜 : 2019. 11.06. 18:14
백일홍과 요월정.
장성군 황룡면 황룡마을은 낮은 야산인 새낙굴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황룡마을은 그 이름만큼이나 용과 관련된 전설이 많다. 아주 먼 옛날 ‘가온(가운데의 옛말로 세상의 중심이 되라는 뜻)’이라는 황룡이 황룡강 물속에서 살았다. 가온은 해질 무렵이면 사람으로 변신해 마을로 내려와 인간의 따뜻함과 정겨움을 좋아하게 됐다. 그러면서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을 도와주고 덕을 쌓은 이들에게는 소원을 들어줬다고 한다.

이렇게 가온은 황룡강에 누워 사람들을 살피며 장성지역을 수호했다고 전해진다.

◇전설이 깃든 황룡·황룡강, 그리고 황룡마을

황룡마을 앞을 흐르는 황룡강에 그 마을을 수호했던 누런 용이 살았는데 그 황룡이 지역의 왕이었다. 고려시대 장성에도 나라가 있었는데 그 왕이 황룡포를 입고 정사를 보았다.

특히 황룡마을은 요새지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황룡강 깊은 물에서 목욕을 하는 군장을 일컬어 봉황연에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따라서 황룡강의 유래는 황룡마을에서부터 나왔을 것이며 황룡마을 이름은 이 지역을 지배하는 군장을 이끄는 황룡에서 유래됐다.
황룡강을 뒤덮은 황화코스모스. 물안개낀 황룡강.

용과 관련된 또 다른 전설을 들어보자.

옛날에 용 2마리가 요월정 앞 용소(龍沼)에 살았다. 그들은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100일 기도를 드렸다. 드디어 마지막 날이 됐고 두 마리의 용은 소나무 위에서 기다리니 한 참 후 올라오라는 분부가 내려왔다. 용들은 하늘의 분부를 받자 안개를 일으키며 하늘을 향해 올라갔다. 그때였다. 마을의 어느 처자가 샘에서 물을 긷다가 우연히 이 광경을 보게 됐는데 잘못해 그만 용의 꼬리를 밟고 말았다. 그 때 꼬리를 밟힌 용 한 마리는 다시 못 속으로 떨어지고 한 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 승천하지 못한 용은 지금도 용소에서 하늘의 부름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용이 떨어졌던 바위를 용바위라 부른다.

장성군은 현재 지역의 곳곳을 노란색으로 디자인하고 있는 색채도시로 변화하고 있다. 즉 ‘옐로우시티’라는 지역 브랜드로 자치단체 최초 색깔 마케팅을 하고 있다. 옐로우시티는 바로 ‘황룡강에 살았던 황룡의 전설’에서 시작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범하고 조그마한 마을에 불과했던 마을 이름 ‘황룡’이 장성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많은 사람들에게 불릴 때마다 이곳 마을 주민들은 자부심을 느낀다.

◇황룡마을에서 인물자랑 하지 마라

황룡마을은 이름에 걸맞게 많은 인물을 배출했다. 첫째가 김황식 전 총리 가문이다. 김 전 총리 가문은 14세 문숙공파, 16세 삼사좌사공파, 22세 사간공파, 26세 송백당공파에 속한다. 전 김총리의 아버지 김원만씨는 장성향교의 전교를 지냈다.

이 마을에는 또 하나의 큰 가문이 있다. 김영하씨 가문이다. 그는 26세 송백당공파의 큰 형 직장공파에 속한다. 그는 연희전문 출신으로 일제강점기에 이 마을에 형설학원을 설립해 가난 때문에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덕을 쌓았다며 칭송하고 있다. 그는 목포시장을 역임했으며 조병옥 박사와 가까운 사이였다.

황룡마을의 또 하나의 자랑은 광산김씨 5대파 중 2번째 대파인 문숙공파 종회각(文肅公派 宗會閣)이다. 이 건물은 문숙공 후손이 화목하고 단결해 추원보본(追遠報本)과 윤갑을 준수할 목적으로 1983년 요월정 우측에 건립한 건물이다. 그 때 문숙공파 종회를 여기서 창립했다. 전면 4칸, 측면 4간의 8작 지붕 한옥구조로 건립했다. 이곳에서 매년 5월에 종원(宗員) 1천여명이 참석해 총회를 갖는다.

황룡마을에도 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많이 떠나 광산김씨 60여 호가 지금은 40여 호로 줄었지만 큰 인물을 배출한 마을로 자긍심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
하늘에서 바라본 황룡마을. 마을공원에 세워진 인물표지석. 황룡정.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경치는…

황룡마을에는 보물이 있다. 바로 요월정 원림. 이곳은 조선 명종 때 공조좌랑을 지낸 김경우가 500여년 전 산수와 벗하며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짓고 조성한 정자와 원림이다. 요월정에 올라서면 옥녀봉이 눈에 뜨이고, 황룡강과 탁 트인 들판이 보인다. 천하제일의 경치가 아닐 수 없다. 정자 주위에는 송림과 100년 수령의 자미나무 60여그루, 배롱나무가 둘러져 있어 특히 여름철이면 그 풍취를 더해준다.

원림에서 눈이 가는 건 배롱나무다. 초록빛이 짙어가는 언덕에 들어선 정자 주위를 제법 굵은 배롱나무들이 호위하고 있다. 정자 뒤에도 배롱나무 군락이 있어 붉은 꽃이 선홍색으로 피어나는 여름날이면 황홀한 풍경을 빚어낸다. 장성에는 고흐의 노란색도, 배롱나무의 붉은색도, 솔숲의 초록색도 있다.

황룡강 변에 들어선 정자에는 당대의 명사들이 찾아와 노닐며 시를 읊었다. 하서 김인후, 고봉 기대승, 송천 양웅정 등 명현들이 시를 읊었으며 그 시가 현판에 새겨 있다. 일화에 의하면 후손 김경찬이 이 정자의 경치를 찬양해 조선 제일 황룡리라 내걸었다고 한다. 이에 나라에서 장성 황룡이 ‘조선제일’이면 한양은 어떠하냐는 질문에 ‘천하제일’이라고 해서 화를 면했다고 전해진다.

이 곳에는 또한 안타까운 사연이 깃들어 있다.

정유재란 때 마을의 남자들은 전쟁터로 나가고 부녀자들만 남게 됐다. 그 때 왜놈들이 마을로 쳐들어왔는데 부녀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차라리 죽는 것이 정절을 지키는 일이라 생각하고 부녀자 8명(여양진씨 가족)이 왜놈들의 눈을 피해 요월정 앞 바위로 모였다. 그리고 모두 그 바위에서 물속으로 꽃잎처럼 몸을 날렸다. 후세에 사람들은 그 바위를 낙화암(落花岩)이라 이름 짓고 그들의 순결한 뜻을 기리고 있다.

‘요월정’ 주변에는 해마다 백일홍 나무가 흐드러지게 핀다. 전해지는 말로는 백일홍을 약에 쓴다고 많이들 베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특히 아기를 낳지 못한 사람이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 해 밤에 몰래 요월정 아래 황룡강을 건너와 백일홍을 따갔다. 이게 그렇게나 효험이 좋다나 어쩐다나.

/최지영 자유기고가·장성=김문태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사진=김영근 기자         김영근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