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8일(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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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골짜기에서는 송홧가루가 지고 있구나
장희구 박사 漢詩 향기품은 번안시조 (346)

  • 입력날짜 : 2019. 11.26. 19:09
山寺(산사)
손곡 이달

산사는 하얀 구름 가운데 자리 잡아
스님은 흰 구름을 쓸지도 않았는데
처음에 문 열리더니 송화 가루 지누나.
寺在白雲中 白雲僧不掃
사재백운중 백운승부소
客來門始開 萬壑松花老
객래문시개 만학송화로

삼당시인다운 기발한 시상 한 마당을 만나면서 가슴이 섬뜩하다. 산사(山寺)는 고요하고 적적하기 그지없다. 흰 눈에 송홧가루라는 시상의 주머니는 의미의 복합성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기승전결이라는 시상의 전개가 보통 사람의 생각을 넘어서서 한 편의 그림을 보거나 신선의 세계에 접어들었다는 생각도 지울 수 없어 보인다. ‘산 속의 절은 흰 구름 한 가운데에 있는데, 스님은 흰 구름을 쓸지도 않고 있다’고 하면서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온갖 골짜기에서는 송홧가루가 지고 있구나’(山寺)로 제목을 붙여 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손곡(蓀谷) 이달(李達·1539-1612)로 조선 중기의 시인이다. 어렸을 때 읽지 않은 책이 없었고 지은 글이 매우 많았다. 최경창, 백광훈과 종유해 세간에서는 이 세 사람을 가리켜서 주선의 삼당시인이라고 일컬었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능해 선조 때 한리학관이 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산 속의 절은 흰 구름 한 가운데에 있는데 / 스님은 흰 구름을 쓸지도 않고 있네 // 비로소 손님이 와서야 문은 살며시 처음으로 열리고 나니 / 온갖 골짜기에서 만발했던 송홧가루가 지고 있구나]라는 시상이다.

위 시제는 [산에 있는 절]로 번역된다. 산사의 겨울, 눈 속에 묻힌 절이란 해석도 가능하리라. 이 시는 기승전결 4단계의 시상에 따라 다소곳이 물음표를 던지면서 시인의 귀에 대고 여쭤 본다. 시인의 대답은 ‘분석은 그럴싸하다’고 대답할 뿐 손 내저으며 사라진다.

기구(起句)에서는 자욱한 흰 구름에 둘러싸인 절인 [불일암(佛日庵)]의 정경이 드러나는데, 시어인 흰 구름은 속세를 벗어난 신선들이 노니는 경지이겠다. 승구(承句)에선 절에서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쓰는 스님이 늑장을 부리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산중에 은거하면서 자연과 벗하는 스님이 만사를 풍요로 구가하는 삶의 여유로움이겠다. 전구(轉句)에서는 별로 찾아오는 이도 없던 절에 새벽부터 손님이 찾아와 문이 열리는데, 속세에 찌든 나그네의 방문은 이 청정한 도량의 맑고 깨끗한 심상을 깨는데, 속세의 먼지를 뒤집어 써야 하는 시련이 온다. 결구(結句)에서는 스님이 절문을 열고 나와 바라보는 속세의 광경인 바, 눈을 멀리로 옮기니 노란 송홧가루가 골짜기를 뒤덮고 있어 마음은 무한대의 여유를 가지고 내달리는 밑그림이다.

※한자와 어구

寺: 절. 사찰. 在: 있다. 白雲中: 흰 구름 가운데. 僧: 중, 스님. 不掃: 쓸지 않았다. // 客: 손님. 來: 찾아오다. 門: 문. 始開: 비로소 열리다. 萬壑: 일만 구렁. 모든 산골짜기. 松花: 송홧가루. 老: 늙다. 곧 송홧가루가 날린 시기가 지나서 떨어지다는 뜻. 늦게 나는 송홧가루.

/시조시인·문학평론가 (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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