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9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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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를 구하라
남성숙 광주매일신문 사장

  • 입력날짜 : 2019. 11.27. 19:12
가수 구하라가 24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현장 감식이나 유족 진술을 종합, 현재까지 범죄 혐의점은 없다고 결론냈다.

연예계 절친 故설리가 사망한지 42일 만에 세상과 작별인사다. 고인은 최근 1여년간 힘든 일이 겹치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왔다. 지난해 9월 전 남자친구와의 폭행 사건을 시작으로 법적 소송을 진행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고, 이 과정에서 최측근의 권유로 심리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 5월엔 극단적인 시도를 했다. 당시 병원으로 이송돼 건강을 되찾았고, 활동을 재개했다.

그동안 한국 소속사가 없었던 구하라는 최근 일본 활동에 전념해왔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설리가 사망하면서 눈에 띄게 힘들어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최측근과 주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잘 버텨왔다. 팬들의 응원과 걱정 속에 잘 이겨내고 열심히 살겠다는 다짐도 했다. 구하라는 설리 사망 이후 SNS에 “설리야 네 몫까지 열심히 살게”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힘든 시간 속에서도 버티겠다는 의지와 다짐을 보여줬던 구하라의 사망은 충격 그 자체다.

연이은 20대 유명 연예인의 사망은 우리 사회의 잘못된 여성연예인관, 악플, 아이돌 육성시스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창에서 악플들을 보면 유독 여성 연예인과 아이돌 들에게 악랄하다.

유명인이라는 이유로 악플에 몸살을 앓았던 설리나 구하라는 유별나고 지독하게 가해지는 여성 연예인을 향한 공격을 고스란히 견뎌야 했다. 25일 녹색당이 내놓은 <여성혐오가 죽였다, 이 사회가 죽였다, 구하라님의 비통한 죽음을 애도하며>란 논평을 보면서 과연 한국은, 여성연예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작금의 현실을 개선할 의지가 있는지 묻고 싶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여성연예인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발표 및 토론회’를 개최한 것도, 여성가족부가 ‘청소년 연예인 성보호·근로권·학습권 실태분석’을 내놓은 것도 고 장자연 사건 직후였던 2010년의 일이다. 구하라와 같은 여성 연예인에게 가혹한 한국사회와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구하라를 죽음으로 몰고간 공범은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연예인이 악플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명예훼손 등의 혐의에 따른 법적대응밖에 없다. 구하라도 지난 6월 소셜 미디어에 우울증을 호소하며 “앞으로 악플 선처 없다. 제 정신 건강을 위해서라도 여러분들께서도 예쁜 말 고운 말 고운 시선으로 보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적었지 않은가.

사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연예인은 무조건적인 고소가 힘들다. 현행법상 정보통신망을 통해 허위사실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지만, 대부분의 악플러는 낮은 벌금형을 받고 만다. 처벌이 더 강화되어야 한다.

더불어 엔터 업계의 아이돌 양성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엔터 기획사들은 체계적인 시스템을 꾸려 한층 경쟁력 있는 아티스트를 내놓기 위해 연습생들에게 더 많은 연습을 요구했다. 덕분에 대부분의 아이돌은 노래와 퍼포먼스 모두에 능하게 됐고 현재는 전 세계에 케이팝의 위상을 떨치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합숙 등으로 인한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연예인들이 많다.

이와 관련 외국 언론은 한국인들의 관음증적 관심도 비판하고 있다. 미국 CNN은 구하라의 죽음을 보도하면서 “이번 사건이 온라인 악플로 인한 K팝 스타들의 극심한 압박에 대한 논의를 재점화했다”고 짚었다. 외국인들도 심각하게 알고 있는 온라인 악플 문제를 전면적으로 손봐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미 공영라디오 NPR은 구씨의 사망을 다룬 기사에서 최씨의 구씨 상대 협박 사건을 거론하며 “세부 사항에 대한 관음증적인 대중의 관심이 급등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협박 사건이 알려진 직후 ‘구하라 동영상’을 비롯한 유사한 검색어가 한국에서 검색 트렌드가 됐다”며 “온라인 댓글을 다는 이들은 악의적인 루머와 비난으로 구씨를 공격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WP) 등 다른 외신들도 구씨의 사망 소식을 다루며 한국 여성 연예인들이 겪는 고충을 지적했다. WP는 특히 지난달 세상을 등진 가수 출신 연기자 설리씨와 구씨 사망을 함께 다루며 한국의 대중문화를 “여성 가수들이 데이트를 하거나 심지어 실제적인 삶을 살아서는 안 되고, 대신 엄격한 규범에 맞춰야 하는 산업”이라고 규정했다.

잘못된 시스템은 정치권이 바꾸어야 한다. 정치권이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엄벌하기 위해 어떤 입법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현재 연예계는 추모 글과 행사 취소가 줄잇고, SNS엔 해시태그 ‘#디지털성범죄아웃’이 이어졌다.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 양형기준을 재정비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엔 하루 만에 동의가 20만명을 넘었다. 아무도 책임 없다 못할 ‘사회적 타살’에 공감, “더 이상 죽이지 말라”는 비원이 쏟아지고 있다.

한때 구하라는 “악플 달기 전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볼 수 없을까”라고 쓴 적이 있다.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댓글문화의 재정비, 연예인을 바라보는 성숙한 의식을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11월 마지막주다.

더 이상 죽지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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