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9일(월요일)
홈 >> 오피니언 > 시론

주 52시간 노동의 의미
최형천
㈜KFC 대표이사·경영학 박사

  • 입력날짜 : 2019. 12.01. 18:45
주 52시간 노동제도가 내년 1월부터 50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 시행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아직 이 제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하여 노동계와 경영계 양측 모두가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당장의 현실적 이해관계만 본다면 이 제도는 불편하기 짝이 없고 불이익만 주는 제도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보다 먼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하여 선진화와 사회적 안정을 찾은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장시간 노동의 관행을 고집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이런 차원에서 현실론을 뛰어 넘어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주 52시간 노동제도의 의미를 살펴보자.

첫째로 주 52시간 노동제도는 일자리 나눔(job sharing)이다. 주 52시간 노동은 단순히 일하는 시간만 축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일하는 시간을 조금씩 양보하여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어느 사이에 일할 사람은 많은데 일자리는 귀한 사회가 되었다. 경제가 성장하는데도 일자리는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시대에 진입한 것이다. 일자리 나눔은 남는 인력의 감원을 피하기 위해 임금감소를 감수하면서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고용을 유지하는 것이다. 1990년대 독일의 자동차업계는 경기하강으로 인한 자동차 수요감소, 생산자동화로 인한 잉여인력 발생 등으로 경영위기를 겪고 있었으며 인원감축이 불가피하였다. 하지만 폭스바겐은 노사간 협의로 20% 인원감축 대신 주 5일근무에서 주 4일 근무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이에 따른 임금축소를 단행하여 고용을 유지하고 회사도 살렸다. 독일이 오늘날 미국을 누르고 최고의 국가경쟁력을 가진 나라가 되고 거의 완전고용에 가까운 취업률을 보이는 것은 일자리가 많아서가 아니라 1인당 노동시간을 줄여서 일자리를 나눈 결과의 몫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독일이 우리처럼 주 68시간씩 일했다면 세계 최악의 실업율을 보이는 국가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일자리 창출은 성장도 중요하지만 일자리 나눔이 그 해답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주 52시간 노동제도는 4차산업혁명의 대응방안이다. 그간 우리경제는 낮은 노동비용을 지렛대로 생산성을 올려 경쟁력을 확보하여 성장을 추진해 왔고 다행히 먹혀 들었다. 하지만 노동의 대부분이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으로 대체 가능한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기대어 생산성을 추구하는 기업은 경쟁력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노동의 양보다 질이 중요한 시대이다. 노동시간을 줄이고 혁신역량을 높여야만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다. 이 제도의 정착을 위해 노동의 양적 평가뿐만 아니라 질적 평가에 의한 임금산정과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에 의한 생산성 향상 분의 분배를 제도화한다면 노동 시간을 줄이면서 효율은 올리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주 52시간 노동제도는 워라밸의 출발점이다. 우리 국민은 OECD국가 평균보다 연간 400시간을 더 일한다. 일이 가정보다 우선이다. 무엇 때문에 일하는지가 의문스럽다. 일과 가정생활이 적어도 균형은 찾아야 한다. 다행히 신한금융 2019년 ‘보통사람금융생활 보고서’에 의하면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52시간제를 실시한 이후로 퇴근시간이 빨라지고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소비패턴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호주의 직장인은 8시간 근무를 하면 사무실 문을 닫기 때문에 5시 이전에 모두 칼 퇴근한다. 판매장도 마찬가지다. 호주 멜버른에서 가장 큰 시장인 퀸빅토리아마켓은 오후 3시에 묻을 닫는다. 다만 식당이나 커피숍은 늦게 까지 영업하는데 대신 늦게 문을 열어 8시간 노동을 준수한다. 우리 식으로 생각하면 굉장히 불편할 것 같지만 이들은 별로 불편해 보이지 않는다.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행복을 추구하는데 합의된 사회의 모습이다. 이들은 내가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중요하기에 다른 사람들의 시간도 소중함을 인정하고 배려하며 함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주 52시간 노동제도는 일자리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살아가자는 지혜로운 선택이다. 물론 개인별 노동시간을 줄이다보면 추가인력 채용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있게 된다. 또한 당장 근로시간이 줄어 결과적으로 임금이 낮아지는 불이익을 감수해야하는 노동계층도 발생할 것이다. 이런 취약 기업과 노동자계층에게는 정부의 일정기간 지원과 정책적 배려가 시급히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변화에 불이익을 받지 않는 대기업, 공직사회도 사회적 변혁에 동참하고 자기 몫을 양보하는 사회적 연대와 책임감을 보여야 한다. 특히 경계할 것은 미래를 위한 고통스런 결단을 외면하고 그럴 듯한 현실론으로 특정계층만 대변하는 정치적 행위는 경계해야한다. 또한 당파적 이익때문에 국가 미래를 발목잡는 일은 없어야 겠다. 성장의 기적을 이루어 낸 한국, 주 52시간 노동제도의 정착으로 이제는 일자리 나눔의 기적을 이루어 내길 소망한다.




▶ 디지털 뉴스 콘텐츠 이용규칙보기





많이본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