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6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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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땅의 전략공천, 약인가 독인가
나의갑
광주전남언론인회 회장

  • 입력날짜 : 2020. 01.22. 17:10
신작로를 따라 학교 가는 길이었다. 적산가옥 앞을 지날 때 6학년 누군가가 벽보를 가리키며 뉴스를 내보냈다.

“대통령 나온 신익희 선생, 오늘 새벽에 죽었다더라. 기차 타고 광주 오다 죽었대. 우리 아버지가 라디오에서 들었다고 하더라.”

작대기(기호)가 두 개인 ‘신익히’는 나비처럼 생긴 것을 목에 차고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작대기가 한 개인 장면은 부통령 후보였다. ‘신익히’에게는 선생 꼬리표를, 장면에겐 박사 꼬리표를 달아둔 벽보도 있었다. 공부는 누가 더 잘했을까. 선생이 잘했을까, 박사가 잘했을까? 주먹만 한 글자들이 벽보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

아이들의 눈빛이 어저께 것과 달라 보였다. 왕잠자리를 잡았다 놓쳐 버린 눈빛, 새로 산 연필을 잃어버린 눈빛 같았다. 그러나 말은 없었다.

얼마 안 있다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배운 게 아니었다. 유행가였다. 그런 걸 부르면 어른들한테 엉덩이에 뿔난 송아지 취급을 받았으나, ‘목이메인 이별가를/ 불러야 옳으냐…’고 해도 어른들은 암 말도 안했다. 이 땅의 헌정 사상 첫 여야 후보의 직선 대결이었던 1956년 3대 대선 촌(村) 풍경이다. 그해 5월5일 아침의 1학년짜리 내 기억이기도 하다.

그 ‘비 내리는 호남선’으로부터 멀리 와 있는 2020년, 이 땅은 다시 총선이다. 4·15 총선 이태 뒤에는 20대 대선이 온다. 2022년 3월9일 국민들은 또다시 그 대선 앞에 놓여 지배를 당하기 위한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4·15 총선 승리가 민주당의 20년 집권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는 큰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총선 길을 잘 닦아야 대선 길이 보드랍게 열릴 거라는 감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압승이 아니라면 문재인의 정치권력이 꺼먼 바람을 타게 될 것이란 예측과 함께, 정권재창출에 비가 올 수 있음이란 예보를 존중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근데 요 며칠 전부터 수상한 바람이 하나 불고 있다. 다른 데도 아닌 광주와 전남에까지 민주당 쪽이 전략공천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것이 그 바람의 정체다. 광주 2곳, 전남 4곳에 전략공천을 검토 중이란다. 열나게 밀어준 대가가 이거냐, 여전히 전라도를 우습게 보고 있는 거다. 전략공천이란 게 특정 후보를 경선 과정 없이 입당 절차만으로 공천하는 것이고 보면 정당이 선택한 후보를 유권자한테 던져준 대로 받아먹어라고 강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할 것이므로 선택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되는 것이며, 자당 후보끼리의 경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리는 처사다. 여론조사를 돌려 다른 당 특정 후보보다 좋지 않게 나오니까 궁한 나머지 전략공천이란 꾀를 낸 것이다. 하나 둘 살리려다 민심을 뒤흔들어 쥐도 덫도 다 잃어버릴 수 있다. ‘집단 배신’을 당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는 것 등이 전라도 땅의 대체적 정서다.

정히 전략공천 카드를 쓰려 한다면 지역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사람은 피해 갈 일이며, 그간 지역에서 당을 위해 고생하거나 생업으로 알고 표밭을 일구어 온 후보 가운데 제일 나은 사람을 골라내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이것이야말로 전라도에 대한 민주당 쪽의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중앙당의 횡포라는 비난도 일렁일 것이다.

저번 총선처럼 전라도 땅에서 국민의당 바람이 불지 말라는 공식은 없다. 그런 정치 공식은 유권자가 만든다. 그러므로 선거는 낮은 자세다. 고개를, 오만하고 방자하게 들면 다친다. 지나간 시절의 정치문법이 전라도 사람들한테 한결같이 먹혀들 것으로 관찰했다면, 그건 철없는 오산이다.

전략공천, 적어도 전라도 땅에선 함부로 내밀지 마라. 그게 약인가 독인가를 사전에 엄중하게 처방한 뒤 ‘압승 장치’로 내놓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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