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2월 28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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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
아름다운 호반에서 백제의 혼을 만나다

  • 입력날짜 : 2020. 02.04. 18:34
120m 쯤 되는 길이에 폭이 15m에도 못 미치는 초미니섬은 대청호 풍경 중에서도 압권이다. 이 섬에는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나란히 솟아 그 모습이 작은 조각배가 떠있는 것 같다.
대청호반을 따라가는 도로가 지그재그로 이어진다. 길은 대청호 주변의 산자락을 돌고 돌면서 호수를 보여주다 숨기기를 반복한다.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이 시작되는 대전시 대덕구 이현동 두메마을에 도착한다. 두메마을은 행정구역상 대전시에 속하지만 산골에 자리하고 있어 청정한 자연이 그대로 살아있는 마을이다.

두메마을에서 호수 쪽으로 5분 정도만 걸어 내려가면 이현동 생태습지가 나온다. 이현동 생태습지는 대청호반 2만6186㎡를 친환경생태습지로 조성해 억새와 수련, 청포, 부들 등이 자라게 했다. 생태습지 오솔길을 걸으며 마른 잎과 줄기만 남아 겨울을 보내고 있는 억새와 부들을 바라본다. 앙상한 억새가 주변을 쓸쓸하게 한다. 오솔길에는 아치형 철골이 설치돼 여름에서 가을철까지는 주렁주렁 열린 조롱박이 터널을 이룬다.


수령 330년 부수동 느티나무와 돌탑,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마을의 안녕을 비는 ‘부수골 목신제’가 열린다.
생태습지를 벗어나자 골짜기 깊숙이 들어온 호수가 잔잔하다. 낮게 솟은 야산과 잔잔한 호수가 금슬 좋은 부부처럼 행복하게 어울린다. 호숫가에서는 수 십 그루의 버드나무가 물속에 뿌리를 내리고 호수와 공생을 하고 있다. 냉천마을로 가는 이정표를 따라 도로로 올라선다. 도로근처에서 내려다보니 이현동 생태습지와 두메마을이 포근하게 내려다보인다. 대청호를 감싸고 있는 산들은 호수위에 또 다른 산을 그려놓았다.

냉천마을로 들어가는 1차선 도로를 따라 걷는데, 마을이 정면에서 손짓한다. 찬샘마을은 예로부터 얼음처럼 차고 시원한 샘물이 솟는다해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입구에는 디딜방아, 물레방아 같은 것들이 놓여있어 옛 마을의 정취가 느껴진다.

찬샘마을을 지나 부수동 방향으로 임도를 따라가는 길이 부드럽다. 임도를 따라 걷다보면 바로 아래에서 대청호 물결이 출렁이고, 2구간 출발지점인 두메마을과 이현동 생태습지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산자락 임도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은 잎을 떨군 채 겨울 산을 지키고 있다.

인공적인 소리라고는 전혀 들리지 않는 길은 조용히 사색하며 걷기에 그지없이 좋다.

낮은 고갯마루에서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를 만난다. 느티나무 옆에는 돌탑이 세워져 있고 돌탑에는 금줄역할을 하는 천이 둘러져 있다. 지금도 이곳에서는 매년 정월대보름에 ‘부수골 목신제’가 열려 마을의 안녕을 빈다. 수령 330년이 넘는 이 느티나무는 높이가 23m에 달하고 대전시 보호수로 지정돼 있다.

지금이야 민가가 없지만 옛날에는 근처에 부수동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부수동 느티나무가 있는 고갯마루를 넘어서도 길은 물 흐르듯 곡선을 그으며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부드럽고 구불구불한 길을 걷다보면 걷는 사람의 마음도 부드럽고 유연해진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빠르고 천편일률적인 직선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보니 마음에 여유가 없어지고 유연함도 잃어버렸다.

호반 숲길에서는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조화롭게 자라고 있다. 소나무와 참나무 같은 활엽수가 많지만 가끔 잣나무 가로수도 있고 이깔나무숲도 만난다. 이러한 숲 사이로 대청호의 푸른 물이 잔잔하게 펼쳐진다.

찬샘마을 뒤쪽 노고산에서부터 양쪽에 호수를 두고 4㎞ 정도 가늘고 길게 뻗어나간 산줄기 끝지점이 바로 대청호를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특별한 전망대 시설은 없지만 호숫가로 내려가서 바라보는 조망은 감동을 자아낸다.

북쪽에서 청남대가 호수위에 떠있는 것 같고, 호수를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들이 불쑥불쑥 솟아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성치산 정상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성치산성, 헐리고 씻겨나가 일부 성벽만 남아 있다.
무엇보다 압권은 120m 쯤 되는 길이에 폭이 15m에도 못 미치는 초미니섬이다. 이 섬에는 소나무와 참나무들이 나란히 솟아있어, 그 모습이 작은 조각배가 떠있는 것 같다. 이 작은 섬 뒤에서 청주와 보은의 산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대청호라는 명칭이 대전과 청주의 첫 글자를 따서 지어졌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호숫가에 서 있으니 호수를 건너온 바람이 들릴 듯 말듯 소리를 전해줄 뿐 세상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새소리마저 그쳐버린 호숫가는 적막감이 들 정도로 조용하다.

다시 삼거리로 되돌아와 성치산성 이정표를 따라 산길을 걷기 시작한다.

대청호오백리길을 알리는 표지판과 리본이 곳곳에서 길안내를 자처한다. 산줄기의 흐름에 따라 길은 오르락내리락한다. 성치산(210m)에 도착하자 양쪽으로 조망이 확 터진다. 고도가 높아지니 대청호와 주변의 산들이 드넓게 펼쳐진다. 성치산 정상에는 삼국시대 백제가 쌓은 성치산성이 있다.

동북쪽 성벽에서 남쪽 성벽에 이르는 부분에 일부 성벽이 남아 있지만 헐리고 씻겨나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성치산성은 북쪽에 대청댐이 위치해 있고, 동남쪽으로는 노고산성, 남쪽으로는 마산동산성, 백골산성과 연결돼 있다. 백제가 금강을 경계로 신라와 대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강 주변 산줄기에 여러 개의 산성을 쌓았던 것이다.

고도 200m 내외의 산이라 크게 힘들지는 않은 편이다. 송신탑이 세워져 있는 노고산(277m) 정상에 도착했다. 노고산 남쪽자락에 오전에 지나왔던 냉천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노고산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는 길로 내려서니 솔숲이 고즈넉하다. 그윽한 솔향을 맡으며 내려서니 찬샘마을과 찬샘정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다.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직동윗피골이라 불리는 작은 골짜기를 지나게 된다. 포장된 1차선 도로지만 차량통행이 거의 없어 우리 일행들만 조용히 걷는다.

산자락을 돌고 돌아가니 찬샘정이라 불리는 팔각정자가 기다리고 있다. 찬샘정에서 바라본 대청호의 풍경 또한 우리의 발길을 쉽게 돌리지 못하게 한다. 호수와 건너편 청주·보은의 산들이 어울린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청호오백리길은 찬샘정에서 호숫가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길 아래로는 펼쳐지는 대청호는 금강의 본류가 흐르던 곳이다. 충북 옥천 땅을 지나 흘러오던 금강이 찬샘정 앞을 지나 성치산 동쪽 자락을 돌아가는 물길이 대청호가 생기면서 훨씬 넓어지고 깊어졌을 뿐만 아니라 이곳저곳 골짜기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어 남한에서 세 번째로 큰 인공호수가 됐다.

호숫가에서는 물버드나무가 차가운 물속에서 겨울을 견디고 있다.

추운 겨울을 잘 견디다보면 어느새 생명력 넘치는 봄이 찾아올 것이다.

호수로 줄기를 뻗은 산줄기에도 맨 몸을 한 활엽수들이 단아한 멋을 풍겨준다. 소나무는 푸른 잎을 유지한 채 독야청청 겨울을 나고 있다. 잎을 떨군 활엽수의 단아함과 소나무의 청신함이 대청호에 수묵화를 그려놓았다.

※여행쪽지
▶대청호오백리길 2구간은 두 개의 농촌체험마을과 백제시대에 쌓은 성치산성을 만나고, 청남대를 바라볼 수 있는 코스로 완만한 임도와 산길이 혼재돼 있다.
▶코스 : 이현동 거대억새밭→찬샘마을→부수동→대청호 전망좋은 곳→성치산성→직동윗피골→찬샘정→찬샘버스종점(10㎞, 4시간 소요)
▶출발지 내비게이션 주소 : 이현동 두메마을 주차장(대전시 대덕구 이현동 190-4)
▶2구간이 끝나는 지점에 닭백숙과 쏘가리탕·메기탕·빠가탕을 먹을 수 있는 냉천골할매집(042-273-4630)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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