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4일(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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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큐레이터 장경화 '오월의 미학'](7)김재홍
時代의 우물에서 미학을 긷다

  • 입력날짜 : 2020. 06.02. 18:25

김재홍은 어린 시절부터 냉혹한 현실을 온몸으로 마주하며, 홀로 성장하면서 어려운 삶을 꾸려야 했다. 순탄치 않은 과정을 거쳐 미술대학에 입학하나 제도화된 대학교육에 자신의 미래를 의탁하지 못하고 중퇴와 계속되는 고단함 삶 속에 홀로 예술정신을 세우고 미학어법을 연마했다.
우리 근대사의 질곡과 아픔, 극복되지 않는 노동계급과 빈부의 격차, 동서의 이념갈등과 남북분단의 현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사회갈등 문제를 그의 예술적 과제이자 주제로 담아내고자 한다. 그는 역사와 시대를 직관하고 통찰해가는 날카로운 붓끝은 현실이라는 벽과 마주하며 타협을 거부한다. 치열한 작가정신과 사실성, 서정성을 앞세운 감동의 리얼리즘(Realism) 미술은 역사의 증언자로 시대와 맞서는 격렬한 무기로 다가온다.


▶역사를 마주하고 시대를 통찰하다
김재홍은 어린 시절부터 냉혹한 현실을 온 몸으로 마주하며 홀로 성장하면서 사회의 밑바닥 삶을 겪어야 했다. 냉혹한 사회와 척박한 현실 환경은 자연스럽게 그의 스승이 돼버린 셈이다. 그는 이렇게 성정과정에 체득된 그의 세계관과 미학관은 잘 팔리는(?) 작품을 그린다는 기대는 접어둔 채 캔버스를 마주했다.

서구 자본시장 이념과 논리가 이 땅에 토착화 돼가는 과정에 현대사회의 노동현실, 빈부격차, 분배의 불공정, 분단의 현실 속에 고착되는 정당치 못한 권력이 그의 눈에 읽혀지고 각인돼 간다. 이러한 모순과 불공정, 군부독재는 과거 역사에서 실마리를 풀어가기 위해 민중의 개념과 역사의 주체임을 확인하는 학습을 반복하면서 이론적 토대를 구축한다.

그는 1980년 5월을 광주를 기억한다. 홍익대 미대를 휴학하고 다음 학비 마련을 위한 아르바이트(만화)에 바쁜 시간을 보냈던 시기라고 한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친구들과 함께 홍대 앞을 지나던 중 평소에 없었던 군·경 합동순찰조와 시비가 붙어 파출소에 끌려가 구타와 함께 유치장에서 하루 밤을 보냈다. 파출소에서 학생신분이 아니었다면 ‘삼청교육대에 끌려갔을 것’이라는 순경의 말에 그는 등골이 오싹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전에 없던 군·경 합동순찰이 ‘광주5·18’의 연장이라는 것은 생각해보지도 못했다. 훗날 구전을 통한 광주소식은 충격이었으며 그는 언젠가 캔버스에 광주를 기록에 남기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는 예술가로 소명의식이자 책무이기 때문일 것이다.

생계와 작품 활동을 위해 그는 화실을 운영하며 1987년 1회와 1989년의 2회의 개인전을 통해 미술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동시에 그룹 ‘20대의 힘’전에 참여하면서 미술계에 활동영역을 넓혀 나간다. 이후 1991년에 ‘민미협’(한국민족미술협회)에 가입한다. 특히 서울의 6·10민주화투쟁과 수많은 민주열사들의 투쟁과 분신, 투신자살 등 뜨거운 아스팔트는 그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의 현장이자 예술적 교훈이었다. 그러나 그는 현장으로 달려가지 못했다. 단체생활의 어색함과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는 성격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생계를 위한 삶이 그에게는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하늘’ (캔버스에 유화, 지름 244㎝, 1991)
그의 대표작인 ‘하늘’은 당시의 시간과 공간을 함축하고 있어 보인다. 원형의 캔버스에 함몰된 절망의 공간을 민중은 내려다보며 자포자기와 깊은 한숨으로 관람객에게 다가온다. 또한 하늘은 회색빛의 암울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대형 원형 캔버스에 인물배치는 독창적인 구성방식으로 절망적 시대상황의 순간을 포착하는 극적 리얼리티(Reality)를 담아내고 있다. 작품을 통한 암울한 현실상황이 함몰의 공간에서 가느다란 빛을 끌어올리고 자는 희망적 메시지를 전하려는 염원이 아닐까? 이러한 경향의 작품은 5·18과 6·10을 기억하고 그 연장선에서 제작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80년대와 90년대의 서울과 광주, 그리고 전국 주요도시 광장과 아스팔트 거리를 최루탄과 화염병으로 뜨겁게 달궈 낼 때 그는 생계를 위한 삶의 현장과 비좁고 음습한 작업실을 오가면서 붓을 세워가며 투쟁했다.


▶동학의 새벽을 기다린다
그는 우리사회 현재적 모순의 반복, 정당치 못한 불공정의 악순환 실마리를 온당치 못했던 역사에 주목하고 역사를 거슬러 역추적은 ‘동학’에 멈췄다. 오늘의 삶은 결코 과거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러한 예술적 화두를 마주할 때마다 밀려오는 두려움과 피해의식은 거친 호흡과 신음소리가 돼 붓 끝에 모아진다.

그는 구한말 근대사의 격동의 시간이자 전환기이며 출발시점인 ‘동학’에 집중한다. 역사의 전환기 속에서 근대주의와 식민지문화를 극복하고자 하는 주체적 민중의식은 역사의 정당성으로 한 시대의 거대한 무덤이 됐다. 그리고 성공하지 못한 역사는 고스란히 민중의 고통으로 이어져 신음과 희생으로 점철돼 한탄의 강으로 남겨지고 말았다. 이렇게 근대의 출발은 ‘동학’이라는 고통으로 서막을 열게 됐다.
‘동학-혁명의 역사’ (캔버스에 유화, 410x190㎝,1994)

김재홍의 작품 ‘근정전-혁명의 역사’는 구한말 청치의 상징이자 민족의 심장부로 ‘동학’의 비운을 함축하고 있다. ‘근정전’은 조선으로 외부와 연결 통로인 창에 일본을 그려 넣었다. 천정과 벽면을 장식해야 하는 오방색의 화려한 문양대신 벽화는 만민평등(萬民平等)의 의지와 개혁의 물결을 짓밟고 있다. 그림의 중앙과 좌우에 희생된 동학의 죽음은 혁명에 원귀가 되고 그 선혈은 두 기둥을 타고 근정전 지하에 깊은 잠이 들고 있다. 그리고 중앙 아래 부분에 아비를 잃은 조선의 아이는 보따리를 매고 좌절의 깊은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하다. 바로 조선의 현실이지만 그 아이는 성장을 거듭하면서 아버지가 못다한 ‘동학’을 일으켜 세울 것이라는 작은 희망이 되고 있어 보인다.
‘근정전-죽우’ (캔버스에 유화, 112x145㎝, 1994)

‘근정전’은 25년 전의 작품으로 그가 역사를 읽어내는 방식은 꾸밈없는 직설적 화법으로 작품을 제작하던 시기였다. 역사적 사실을 예술적으로 꾸미거나 가공을 거치지 않고 상징적 순간순간을 포착해 시각적 거슬림이 없이 화면을 구성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형 캔버스에 카메라 와이드 렌즈를 통해 보듯 확장된 공간감으로 펼쳐내는 그의 탁월한 회화적 방법론과 집요한 역사의 사실적 묘사력은 미학적 완성미를 더욱 높여주고 있어 보인다.

일반적 역사화는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이나 상황배경을 담아내는데 간혹은 한계나 어려움이 동반된다. 그래서 역사화는 인내심을 갖고 마주하는 역사주변의 다각적 접근과 다양한 해석이 필요하다. 특정한 역사적 사건에 매몰되지 않고 사건주변 상황이나 배경에서 다양한 소재를 얻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의 그의 작품 ‘근정전’은 독창적 조형성과 미학어법으로 대하소설을 읽는 역사적 스토리와 상상력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본다. 이와 함께 확장된 회화적 공간감은 역사화의 새로운 양식을 제시는 30대 중반의 성숙된 청년작가의 역사접근과 해석 그리고 뛰어난 회화성을 느끼게 한다.

1997년, 그는 군부독재 대응을 위한 정치적 주제인 민중미술의 거친 그림은 20여년 투쟁으로 일정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의 민중미술은 환경과 자연으로 전위와 확산을 꾀한다.


▶대지의 거인과 노인의 몸에서 읽히는 역사
그의 땅은 파헤쳐진 들판이나 거친 산등성이로 그 곳에 거인이 누워 꿈틀거리는 생명이 존재한다.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와 거칠게 할퀸 들판과 바위덩어리, 추수를 마친 논바닥에 고인 물, 저물어가는 황혼과 스산한 초겨울의 분위기 모두가 그의 작품 ‘거인의 잠’ 연작에 등장되는 이미지다.

대지에 누워있는 ‘거인’은 이 땅을 일궈가는 주인인 민중으로 할퀸 땅, 마른 나무, 스산한 황혼의 하늘 모두가 오랜 역사 속에 권력과 외세에 의한 침탈과 억압의 흔적이다. 그러함에도 거인은 누어 몸을 내어주고 있다. 결코 그 거인은 무기력한 자포자기나 절망적이지 않다. 오히려 마른 땅과 마른 가지에서 생명 싹과 어두워 가는 황혼은 새벽을 기다리고 있다.

‘거인의 잠’ 연작을 통해 그는 역사를 접근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과거 작품을 통해서는 시대적 상황이나 역사적 사건에 몰입하는 경향이 강했다면 ‘대지’의 연작을 통해서는 자연과 생태적 프리즘으로 장구한 땅의 역사를 읽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수식적 또는 상징적 이미지가 없이도 황량하고 파헤쳐진 대지와 초겨울의 스산한 황혼으로도 모든 역사적 상황을 암시와 인문적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역사를 꿰뚫어 내는 통찰력과 시야의 확장 그리고 회화의 소중한 가치인 서정성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김재홍은 우연치 않게 장인(97세)의 메모장과 몸에 새겨진 크고 작은 삶의 기록과 상처들을 발견한다. 장인은 일제강점기에 징병돼 만주에서 소련군에게 포로로 하바로프스크 수용소에 끌려가 해방을 맞이한다. 대동아 전쟁이 종료되고 소련의 포로수용소에서 풀려나 친척이 살고 있던 신의주에 기거 도중 한국동란으로 남으로 향하는 길목이 차단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 미군의 포로로 거제도수용소 생활 이후 국군에 입대해 첫 휴가로 강화도의 집을 향한다. 그러니까 집을 나온 지 10년 만에 다시 귀가 한 것이다. 장인이 살와왔던 시대의 많은 분들이 겪어야 했던 고국을 잃고 이데올로기의 슬픔과 고통의 상처들이다. 한 시대를 격렬하게 살아온 장인의 몸은 질곡의 역사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던 삶의 흔적이기에 그는 놓치지 않고 소중한 작품소재로 포착한다. 그는 한 인간의 삶을 통한 질곡의 현대사를 들어다 보는 암시적이고 귀납법적 역사 읽기로 ‘아버지’ 시리즈를 시작한다.

‘아버지-장막2’ (360x162㎝, 2004) 사진 위, ‘아버지-손’ (182x91㎝)

그의 작품 ‘아버지’ 시리즈는 몸에 각인된 철조망에서 분단국가의 현실과 고통을 담아내고 가슴 쇄골에 그려진 포탄, 전쟁포로라는 몸에 새긴 PW, 윤기없이 깊게 패인 주름진 손등과 목, 등판에 새겨진 성조기의 붉은 흔적 등 분단된 한반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마치 죽은 자의 몸처럼 핏기가 없고 몸에 생긴 상처는 물감이 아닌 가느다란 선은 흙을 사용해 시각적 효과를 증대시키고 화면구성은 지극히 단순하고 암시적이다. 그는 ‘아버지’의 연작을 통해 한반도의 분단된 현실의 고통, 이데올로기와 평화, 죽음과 생명을 통한 삶의 가치를 고민하며 역사를 읽게 한다.

김재홍은 2004년 ‘아버지’ 시리즈로 전시를 마치고 14년이라는 깊은 공백기를 갖고 일러스트 화가로 그림책에 집중한다. 무거운 주제의 거친 작품으로 생계를 유지하기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2000년 중반 일러스트 화가로 활동은 권위있는 국제 상을 연속 3회를 수상하는 성과를 올렸다. 그리고 다행히도 현재는 작업실로 다시 돌아와 마른 물감과 붓을 정비하고 ‘신자유주의’라는 주제로 다음 작품을 계획한다. 그의 탄탄한 회화성을 바탕으로 역사와 시대를 관통하는 예술적 상상력은 시대모순과 빅 부라더, 평화의 한반도, 현대인의 끊임없는 욕망, 자연과 생태계, 노동계급과 자본가 등등에 대해 고발과 현대인의 삶에 대한 예술적 대안을 힘차고 섬세한 그의 붓 끗에 모아간다.

※김재홍은..
▶약력 (1958, 경기도 의정부) ▶홍익대 미술대학 중퇴 ▶개인전 11회(서울, 파주) ▶주요초대전, 2019 ‘광장’전(국립현대미술관), 2017 ‘균열’전(국립현대미술관)·‘청년의 초상’전(국립역사박물관), 2010 ‘경기도의 힘전’(경기도미술관), 2009 ‘Ultra Skin’(코리아나미술관), 2009 ‘그리다’전(서울시립미술관),2005 ‘장면들’전(서울시립미술관) 외 80여회 ▶작품소장처 / 국립현대미술관, 부산시립미술관, 모란미술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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