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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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큐레이터 장경화 '오월의 미학'](9) 안창홍
일그러진 초상이 빚어낸 생명

  • 입력날짜 : 2020. 06.30. 19:23
안창홍은 유년시절부터 내성적 성격으로 말 수가 적어 혼자 그림 그리는 놀이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주변사람들로부터 ‘그림 신동’이라는 칭찬을 들으며 성장 했다. 그에게는 일상에 널려있는 찰흙, 크레용, 종이, 가위, 나무조각, 성냥개비, 빨래비누 등등 모두가 호기심과 상상력을 이끌어내는 대상이 됐다. 화가를 목표로 그림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고등학교 시절이다. 학교에서는 미술장학생으로 학비면제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미술재료 지원은 물론 미술실을 제공해 줬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미술대학 진학이라는 제도권 교육을 당당하게 거부하고 ‘나의 큰 스승은 세상이라는 이름의 더 없이 넓고 깊은 바다이자 지혜의 보물창고’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눈에 비춰진 공평과 정의가 일그러진 세상에 맞서기 위해 그는 어둡고 칙칙하고 아름답지 못한 그림을 그려왔다. ‘그림 신동’으로 출발한 그의 예술관은 시대의 반항아로 부당한 사회와 맞서 자유와 건강한 시대정신을 위한 날카로운 비수가 돼야 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사건이 그의 예술관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데…. ‘부마사태’(1979)와 ‘광주5·18’(1980)이다.

‘전쟁2(보리밭에서)’ (종이위에 색연필, 파스텔 79.5×109.5㎝ 1984)

▶국가폭력에 맞서는 외침의 증언
70년대 초반, 고등학교 졸업 이후 안창홍은 엄혹한 군사독재시절의 현실과 맞닥뜨린 시간들은 풋내기 화가 눈에 비친 군부독재와 사회의 불공정과 부조리를 온몸으로 느끼면서 정체성에 혼란을 겪어야 했다. 자기 예술에 대한 열정은 타자의 삶으로 짓누르는 사회 중압감으로 미학적 촉수를 확장시키면서 모순이 또 다른 모순을 잉태하는 시대의 암울함을 읽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시기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약관의 20대 초반의 청년임을 감안하면 그의 예술적 비범함은 일반적이지는 않다.

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거친 붓놀림과 회화양식으로 탐욕스러운 기성세대의 욕망과 폭력성을 담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면서 산발적인 발표를 해간다. 천진스런 아이들의 놀이인 ‘전쟁놀이’를 소재인 ‘위험한 놀이’ 시리즈와 국가폭력과 근대 산업화 과정을 통한 가족사의 비극을 담은 ‘가족사진’시리즈를 시작한다.

‘부마민주항쟁’(1979), ‘광주 5·18민주항쟁’(1980),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1982) 등 일련 된 민주화의 소용돌이는 그를 더욱 거침없이 정치적인 사건을 상징적으로 기록해가는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

1979년 부마민주항쟁 때는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그의 정의감과 무기력한 자괴감은 거리로 광장으로 이끌고 있었다. 당시 고(故) 노무현(전 대통령)과 함께 최루탄을 같이 마셔가며 골목과 거리를 뛰어다녀야 했다. 그리고 이듬해 1980년 광주 5·18을 군에서 전역한 후배의 광주진압 구전과 영상자료로 접하면서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역사와 시대 앞에선 예술가로의 책무감은 붓을 움켜잡게 했다.

안창홍은 광주 5·18을 주제로 연작을 제작했고 그중 ‘전쟁 2, 보리밭에서’(1984)를 본다. 붉은 황혼과 보리밭을 배경으로 시골 아낙이 남편의 시체를 안고 울고 있고 아이는 엄마의 등에 붙어 슬픔도 잊은 채 어찌할 줄 모르고 붉은 하늘에는 비행기가 추락하는 암울하고 공포스럽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붉은 하늘과 보리밭의 대담한 화면 구성을 했다. 이름 없는 시골아낙의 절규로 상징된 수많은 광주시민의 죽음들은 무자비한 국가폭력으로 희생된 이름 없는 가족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과 슬픔으로 기억하게 한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의 연이은 발표로 안기부와 경찰에서 부산에 단 한사람이었던 반 체제 화가인 그의 전화를 도청하고 미행을 했다. 안창홍은 80년대 국가폭력 앞에 당당하게 맞서면서 민주와 자유를 공정과 정의를 위한 손에 쥔 붓은 칼과 총보다 더욱 확고한 무기가 돼 시대와 역사 앞에 외침으로 저항하며 증언을 시작한다.

‘봄날은 간다’ (mixed media on photograph collage 2008)

▶‘가족사진’, ‘봄날은 간다’ 깨어진 사진들
1980년 초, 안창홍은 부산에서 친구가 미술학원을 운영해 달라는 요청으로 운영이 몇 해 되지 않아 학생 수가 폭발적으로 많아졌다. 그만큼 돈도 벌렸으나 상대적으로 자신의 그림에 전념할 수 없었다. 그는 안주 할 수 있는 기회였으나 만족하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도전을 시작했다. 미술학원은 후배에게 맡기고 다시 빈 몸으로 상경(1989)해 몇 개월 후 양평의 폐가를 인수해 현재까지 30여년을 작업에 전념하고 있다.

1987년 ‘6·10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그는 한국 근·현대사의 정당치 못한 음습한 곳과 급속도로 치닫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와 부조리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억울한 희생의 역사, 찢겨지고 상처나고 고통스러운 약자들, 권력과 성(性), 인간의 욕망과 탐욕, 지배계급과 피지배 계급의 갈등, 자본주의 어두운 민낯 등 근·현대사의 어두움의 가중은 결국 약자라는 이름으로 안아야 했던 고통과 슬픔, 그리고 가진 자에 대한 비아냥에 그의 미학적 시계는 멈춰지게 됐다.

그는 이 시기 기념비적인 회화적 성과를 올리게 된다.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가족사진’과 80년대 들어 ‘봄날은 간다’ 연작은 과거 근·현대사에 이름없는 자들에 대한 기록으로 개인과 그 가족에 집중한다. 사진에 등장하는 이름 없는 민중으로 그들은 목숨을 내려놓고 항일운동을 했던 독립군이거나 그 가족들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군부독재에 맞서 고문과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던 민주투사였거나 그 가족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역사와 시대의 중심에 서보지도 못하고 희생된 민중들이다. 이렇게 불안정한 역사의 피지배계급은 작품에 등장하는 사진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강한 이미지를 드러내게 된다. 양식적으로는 자그마한 사진자체를 작품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사진을 캔버스에 확대해 탁월한 묘사력으로 회화적 재구성했다.

오래된 사진 속의 인물은 눈을 검게 칠하거나 감고 있어 영혼이 없이 맞닥뜨린 죽음을 이미 받아들였거나 또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역사를 망각하고자 눈을 감고 있다.

작품 속의 인물들은 현실의 고통과 궁핍, 슬픔과 아픔, 배고픔과 상실들로 막다른 현실을 넘어 서려는 비극의 초월과 공존을 위한 긴장감이 읽혀진다. 그리고 머지않은 미래의 예견된 죽음을 아무런 저항 없이 어쩌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현실이탈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일부 작품은 깨어진 거울 속의 사진처럼 그려져 있다. 이는 그만의 독창성과 흥미로운 미학어법이다. 마치 작품은 날카로운 물건으로 훼손되고 이어 붙여지는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사진 속에 등장한 인물을 통해 과거 우리 잘못된 역사를 상징적으로 담아내고 있거나 더러는 역사가 붕괴되고 조각나듯 망가지는 피의 역사로 더러는 깨어져 파편이 된 시대의 고통을 담아낸다. 이렇듯 그는 부당한 권력의 폭력앞에 고통과 슬픔으로 망가지는 아픔을 한(恨)으로 안아야 하는 이름 없는 가족사와 사람들의 모습을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이고 상징적으로 때로는 비아냥거리는 화법이다.

안창홍은 사진을 활용한 흑백의 ‘가족사진’과 ‘봄날은 간다’ 연작은 80년대와 90년대를 관통하면서 그가 바라보는 역사관과 세계관을 통한 독창적인 미학어법으로 예술적 이미지를 확고하게 만들어 주는 시기였다.

‘베드 카우치1’ (acrylic on canvas, 210x450㎝ 2008)

▶‘49인’과 ‘베드 카우치’의 생명과 야성
안창홍은 2000년 초에 우연치 않게 쓰레기 더미에 증명사진 필름이 들어있는 박스를 발견하게 된다. 폐업한 어느 사진관에서 버려진 필름이었다. 그는 필름의 일부를 인화해 받아 든 순간 예술적 충격으로 다가오게 됐다. 사진 하나하나가 박제된 시간 속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그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는 80년대부터 꾸준하게 사진을 모티브로 작품을 제작해 왔던 터라 남다른 영감을 얻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작품은 ‘49인의 명상’ 연작이 탄생됐다.

‘49인의 명상’의 사진은 과거 ‘가족사진’이나 ‘봄날은 간다’ 사진처럼 50여년이 넘은 흑백사진이 아닌 최근의 컬러 사진들로 어린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이다. 사진 속의 인물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지만 작품에서는 눈을 감게 그려져 있다. 무언가를 명상하고 있는 듯하다. 눈은 사람의 얼굴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느끼는 창(窓)인데 왜 감게 그려 놓았을까? 그리고 각양의 인물 속에 나비와 함께 붉은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공통적으로 그려 넣었다.

그의 작품 ‘49인의 명상’ 연작은 삶과 죽음의 틈, 소멸된 시간과 현재의 틈, 사진 속의 인물이 존재했던 장소에서 빛바랜 박제된 공간의 틈을 찾아가고자 하는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틈’은 ‘사이’나 ‘여백’ 또는 ‘공간’으로 그가 찾고자 하는 ‘틈’은 하나의 개념과 반대되는 개념사이의 벌어지는 여유의 여백에서 죽어가는 틈이 아닌 또 다른 생명과 희망을 읽어가고 잉태하는 개념으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인물의 입술에 붉은 색으로 생기를 부여했고 나비를 공통된 기호처럼 그렸다. 작품에 이러한 상징적 메시지는 눈을 감은 인물의 틈은 절망이 아닌 희망과 자유의 명상으로 생명의 명상일 것이다.

‘베드 카우치’ 연작은 대형화면에 옷을 벗고 성기를 부끄러움 없이 당당하게 드러내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작품에 등장한 모델은 그의 주변에서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로, 모두 보디빌더나 피부미용으로 가꿔진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의 사회의 ‘갑’이 아닌 ‘을’로 그들이 실존하는 사람의 건강성과 함께 퇴화되지 않은 야만성과 동물적 본성을 통해 사회적 억압이나 위선에 일탈된 카타르시스를 흑백으로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을’의 모습은 신선함과 함께 부끄러움이 없는 당당함으로 오히려 도발성이 화면에 가득해 인간의 원초적인 냄새를 담아내고자 의도가 강하게 읽혀진다.

현대인은 일상을 통해 많은 위선과 가면을 갖고 살아가고 이러한 일상이 오히려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기도 하다.

그의 작품 ‘베드 카우치’ 연작은 현대사회와 현대인의 삶의 태도에 인간성 회복의 외침으로 느껴진다.

안창홍은 ‘베드 카우치’의 연작을 마지막으로 그가 50여년간 인물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그리고 성공한 작가로 미술계과 시장에서는 존중받고 있다. 그는 긴 시간동안 많은 성과를 일궜지만 그 중 그의 예술이 가장 자유롭게 익어있는 작품을 꼽아본다면 ‘베드 카우치’ 연작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50여년의 예술적 성과를 보자면 현실의 어두움과 절망적 거친 비판과 비아냥의 출발이었다면 이제 희망적이며 인간적 삶의 미학을 읽을 수 있다.

▶약력 (경남 밀양생, 1953) ▶부산 동아고등학교 졸업 ▶초대전:2019 이름도없는… (경남도립미술관), 화가의 심장 (아라리오갤러리, 서울), 2017 눈먼 자들. (조현화랑), 2015 나르지 못한 새 (아라리오갤러리,천안), 2013 제25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전 (조선일보미술관), 2011 불편한 진실 (가나화랑), 2010 제10회 이인성미술상 수상전 (대구문화예술회관) 등 ▶수상:이중섭미술상, 이인성미술상, 부일미술상, 봉생문화상, 카뉴국제회화제특별상(카뉴, 프랑스) ▶작품 주요소장처:국립현대미술관, 경기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서울시미술관, 구삼뮤지움, 부산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경남도립미술관, 사비나미술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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