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5일(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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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월을 기록화한 광주사람 정용화
홍인화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연구실장
국제학박사

  • 입력날짜 : 2020. 07.09. 19:23
한 개인의 삶이 역사의 수레바퀴에 끼이면 정말 고통스럽다. 고통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이며 오히려 꽃을 피워냈을 때 역사는 그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기록물로 고전이라 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의 수집과 출판을 이끌어낸 한 사람, 정용화(5·18 민주화운동기록관장)선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가슴이 쪼여오는 긴장감에 휩싸인다. 1980년 당시 그는 전남대 휴학생이었다. 1978년 교육지표사건으로 복역하고 나와 있던 상황이었다. 5·18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상무대 영창에 구속됐고 그해 10월 말 석방됐다. 당시 고교 선배인 박영규(당시 광주지방국세청 근무)선생이 그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건넨다. “그 누군가는 그 역사적 진실을 알리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서 후대에 알리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그 순간,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평생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했다.

5·18 자료 수집에 착수했다. 먼저 감옥에 갔다 온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모았다. 5·18 직후 살얼음판 같았던 광주 상황에서의 작업이 쉽지 않았다. 비밀리에 행해졌다. 그해 11월 초부터 1981년 7월초까지 8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자료수집이 진행됐다. 구속자 가족들을 통해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려 애를 썼다. 또 항쟁당시 투사회보를 제작했던 들불야학 팀의 도움을 받았다. 자료수집이 한창 진행되던 무렵 1981년 3월과 4월초 5·18관련자들 상당수가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들이 참여하면서 자료의 정리 작업에 탄력이 생겼다. 항쟁에 직접 참여했던 이들의 구술 증언이 큰 도움이 됐다. 이때 수집된 자료는 목격담, 일기, 수기를 비롯해 성명서, 병원 진료기록, 판결문, 공소장 등 재판기록, 사진까지 포함돼 있었다. 대략 사과상자 6박스 정도였다.

정용화 관장은 ‘윤한봉 밀항’(1981) 사건 및 ‘아들사건’(조봉훈·정의행) 등의 연루혐의로 도피생활을 하던 중 1982년 12월 경찰에 자진 출두해 기소유예로 석방됐다. 정용화는 출소하자마자 출판 준비에 들어갔다. 1982년 12월25일까지 정상용(전 국회의원) 등 5·18항쟁 관련자들도 모두 석방된 상태였다. 1984년 보관해 온 5·18자료를 바탕으로 새롭게 정리해 극비리에 출판 작업을 추진한다. 집필은 이재의 선생이 책임지고, 출판과 여타경비를 포함한 제반사항은 정용화 관장이 총괄지원하기로 했다. 1984년 말 핵심 인물 40여명과 목포 등 지역별로 주요 인사들을 취재했다. 1985년 5월 초판을 발행했다. 그리고 2017년 32년 만에 전면개정판으로 출간했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가 탄생하게 된 과정이다.

이 과정을 담은 전시가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특별전시로 ‘넘어 넘어 : 진실을 말하는 용기’가 지난 5월18일-2021년 3월28일까지 서울기록원에서다. 현재는 코로나19로 잠시 휴관 중인 이 전시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고전이라 할 기록물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온전히 담아냈다. 황석영은 “이 빛나는 계절에 위대한 시민들은 세상을 바꿔 놓았다”며 지금 코로나19로 광주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광주정신으로 잘 이겨 낼 거라고 격려했다. 정용화 관장의 삶은 5·18기록물과 함께 한 과정이다. 상무대영창에서 양쪽 고막이 찢어지고 터지는 고통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물을 수집하고 책으로 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는 문병란 시인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희생됐던 고인들의 영결식에 바쳐진 ‘부활의 노래’라는 시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아 오는구나 돌아오는구나 그대들의 꽃다운 혼, 못 다한 사랑 못 다한 꿈을 안고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부활의 노래로 맑은 사랑의 노래로 정녕 그대들 다시 돌아오는구나 이 땅에 우뚝 솟은 광주의 어머니 역사의 증언자….(생략)’

5·18재단, 5·18연구소,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등에 정용화 관장의 기증물들이 많다. 한 사람이 시작하여 많은 사람이 나섰고, 그 결과 5·18은 훼손되지 않고 기록물로 남게 되었다. 이 기록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이제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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