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5일(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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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노동훈 애국지사의 마지막 당부
박지혜
광주지방보훈청 보훈과 주무관

  • 입력날짜 : 2020. 08.11. 17:10
작년 3·1운동 100주년 기념식에서 힘차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노동훈 애국지사께서 돌아가셨다. 정부는 노 애국지사 빈소에 대통령 명의 근조화환을 보내고, 박삼득 국가보훈처장과 이용섭 광주시장이 빈소를 찾아 숭고한 애국정신에 경의를 표했다. 광복절을 일주일을 앞둔 8월8일 운구행렬은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했고, 노 애국지사는 묘역에서 영면에 드셨다.

노 애국지사는 1943년 광주사범학교에 재학 중 일제의 차별 교육에 반발, 친구들과 함께 무등독서회를 조직하고, 민족독립운동과 식민사관에 대항한 정통역사관 확립에 노력하였다. 그리고 연합군의 한국 상륙 시 행동대원으로 봉기하는 것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연락원으로 밀명을 실행하는 계획 등을 논의하다가 1944년 나주경찰서에서 옥고를 치르셨다. 정부는 노 애국지사의 독립운동 공적을 기려 1995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했다. 노 애국지사는 해방 후 1946년부터 1992년까지 교편생활을 통해 학생들에게 올바른 길을 가도록 유도했고, 4남 4녀의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내 이 사회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했다. 명절, 생신 때마다 맑은 목소리로 당시 독립운동 상황을 술술 말씀해주시고, 자신을 알아봐 준 대한민국에 항상 고맙다, 더 바랄게 없다고 하셨던 목소리가 아직 생생하다.

노 애국지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면서 헛헛한 마음에 생전에 집필하셨던 자서전 ‘내일로 뻗어가는 나의 길’을 펼쳤다. 일제 시대에 태어나 대한민국의 독립을 꿈꿔왔던 10대, 그리고 배고픔과 고난의 연속이었던 20대에 겪은 6·25 전쟁, 교사로서 지켜본 4·19 혁명과 5·18 민주화 운동. 노 애국지사는 자신이 겪었던 일생을 덤덤이 말씀하시면서 우리 젊은이들은 열심히 공부해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고 하셨다. 우리 대한민국 현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민국을 지켜내셨던 분이 비단 노 애국지사 뿐이랴.

2020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지난 1월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에 따라 8개월째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고, 경기도 물류창고 화재, 최근 수해로 인한 각종 사고까지, 뉴스를 보기조차 힘겨운 나날들의 연속이다. 그러나 어려울 때 공동체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코로나19 위기 속 대구와 수해를 입은 피해 지역민들을 위해 손 내밀던 대한민국의 이름 모를 국민들, 역사 속 우리 국민은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발적으로 난관을 헤쳐 나갔고 또한 공동체를 위하여 자신의 삶을 희생했다. 이번 광복절에는 노 애국지사의 나라사랑 정신을 되새겨보고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가꾸어나가는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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