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4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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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부르는 악성 댓글
이윤배
조선대 명예교수·컴퓨터공학과

  • 입력날짜 : 2020. 09.28. 18:30
얼마 전 지독한 악성 댓글에 시달리던 여자 프로 배구 선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모 프로 야구 구단의 투수 역시 악성 댓글에 시달리다 공황장애까지 얻어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다. 결국 국내 양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은 스포츠 뉴스 댓글을 잠정 폐지키로 했다. 도 넘은 악성 댓글에 선수들의 피해가 심각하다는 공감대가 확산하면서 나온 불가피한 조치라고 할 수 있다.

연예계도 예외가 아니다. 악성 댓글로 인해 2019년 한 해 동안 배우 전미선, 차인, 가수 설리, 그리고 구하라까지 차례로 대중의 곁을 떠났다. 이들의 예상치 못한 세상과의 이별에 추모의 물결이 이어지면서 연예계에 만연한 악성 댓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결국 2020년 3월 네이버는 악성 댓글로 인한 연예계의 피해가 심각해지자 ‘인물연관 검색어’와 ‘연예 댓글 서비스’를 종료했다.

‘악성(惡性) 댓글’은 타인을 악의적으로 비하할 목적으로 작성하는 글을 말한다. ‘악플’로 줄여 부르기도 하며, 악성 댓글을 다는 사람을 ‘악플러’라고 한다. 지금 악플러들은 인터넷 익명성의 보호막 속에서 쾌락과 향락의 절정은 물론 하고 싶은 말들을 무차별적으로 토해내고 있다. 자신과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막무가내로 욕설을 퍼붓고 흑백 논리로 편을 가르며, 마녀 사냥식 집단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 맞아 죽는다”라는 속담처럼 악플은 악플러에게는 심심풀이 스트레스 해소일지 몰라도 피해 당사자에게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악플로 인한 피해자는 마음에 큰 상처는 물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심하면 다양한 정신질환에 시달리기도 하고 최악의 상황에 다다르면 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악성 댓글이나 신상 털기 등은 퍼뜨리는 데만 집중돼 당사자만 애꿎은 피해를 보기 일쑤고 피해를 구제받는 방법 역시 마땅치 않다. 법에 호소해 악플러를 처벌한다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미 일파만파 퍼져버린 악플을 쉽게 지울 수도 없다.

그런데 이 같은 악성 댓글이 사회적 핫이슈가 되는 주요 원인은 국내 주요 포탈 사업자들이 돈벌이에만 급급한 나머지, 사회적 책임은 방기(放棄)한 채, 뉴스를 ‘진열’하는 독특한 방식을 채택하고, 달 수 있는 댓글 수 역시 크게 제한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포탈 방문자들이 댓글을 봐야 해당 사이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이를 기반으로 포탈의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상술(商術)에 기인한다.

그러나 외국 유수 포탈들은 대부분 ‘아웃 링크’ 방식을 택하고 있다. 전 세계 검색 포털의 점유율 90%를 자랑하고 있는 구글을 비롯한 러시아의 1위 포탈 얀덱스, 중국의 바이두 등은 뉴스를 클릭하면 해당 언론 사이트로 곧바로 연결되고 이곳에서 뉴스를 보게 돼 있다. 해당 언론 사이트를 방문한 다음, 필요하다면 댓글을 달 수도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주로 악플을 다는 청소년들이 사이버상에서의 일탈 행위를 전혀 ‘범죄’로 인식하지 못한 채, 재미 삼아 악플을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인터넷의 역기능 속에 세계화의 주역이 돼야 할 청소년들이 아무런 대책 없이 사이버 공간에 버려진 채 영혼이 병들고 망가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청소년들이 정보화 소양을 갖추고 자율적, 창의적, 도덕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인터넷 윤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유치원은 물론 초등학교 인터넷 윤리 과목을 필수로 지정하고 인터넷 윤리를 전문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지도 교사 양성도 함께해야 한다.

그리고 상습적인 악플러나 가짜 뉴스를 생산해 무차별적으로 퍼뜨리는 몰지각한 유튜버나 누리꾼들을 일벌백계로 처벌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도 시급하다. 헌법상의 ‘표현의 자유’란 무책임한 불법·탈법 표현물까지 무한정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법과 원칙을 벗어나지 않을 때만 보호받을 수 있는 까닭이다. 국내 포털사이트 사업자들 또한 기업의 이윤 추구에만 골몰할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여론을 조작하고 호도할 수 있는 조직적인 악성 댓글을 예방할 수 있도록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이를 위해 아웃 링크 시스템을 적극 도입하고, 악성 댓글로 인한 피해자들이 발생하면 이들을 신속하게 보호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근본적인 체계를 조속히 갖추어야 한다.

그런데 포탈 사업자들의 자본 논리 때문에 정치판의 부정과 부패가 조장되고, 여론의 왜곡이 시도 때도 없이 이루어진다면 이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폭거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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