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30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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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여는 詩]낮잠을 보며
황학주

  • 입력날짜 : 2020. 10.25. 18:40
황학주
아프지 않을까 저렇게 박히듯
바싹 그리운 쪽으로
뺨을 떨구고
자면,
배 위에 작은 콩알만한 호박반지
배꼽이 마르고 있네.
세상의 뒤쪽에 쓴
결혼 서약 한 장을 깔고
나 말고
모든 것이 보고 싶지 않을까. <시집 ‘너무나 얇은 생의 담요’ 세계사 2002>


[시의 눈]

어떤 이가 낮잠에 빠진 걸 볼 때 나도 더불어 마냥 편안해지지요. 우선 ‘바싹 그리운 쪽으로’ 기운 잠든 사람의 배가 눈에 띱니다. ‘콩알만한 호박반지’를 낀 손이 얹어져 함께 조용히 오르락내리락 하니까요. ‘배꼽이 마른’다는 시적 기미가 있어 밀밀하게 전해옵니다. 그가 ‘그리운 쪽’이 아닌, 그러니까 몸이 기울어진 반대쪽에서 나만 제외한 모든 걸 다 보려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화자는 괘념치 않지요. 저렇게 박히듯 잠든 그를 보며 짐짓 ‘아프지 않을까’ 기우뚱해진 한켠을 오히려 걱정해 주는 아량도 있습니다. 시는 ‘낮잠’ 속의 내 소외가 상상되지만, 사실 ‘모든 것’이라는 확장으로 위안을 삼지요. 잠에 빠진 이의 내면 읽기를 통해 나의 존재를 유추하려는 심리가 흥미롭게 읽힙니다.

황학주 시인은 광주에서 태어나 우석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87년 시집 ‘사람’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후, 시집 ‘내가 드디어 하나님보다’, ‘갈 수 없는 쓸쓸함’ 등을 냈습니다. 현재 문예지 ‘발견’의 발행을 맡고 있습니다. <노창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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