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3일(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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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갑수와 함께 걷는 길]속리산 세조길
자연의 질서 따르는 삶이 곧 부처의 길

  • 입력날짜 : 2020. 11.17. 18:27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제915호)은 앞면 7칸, 옆면 4칸의 2층 팔작지붕이 웅장하다. 대웅보전은 밖에서는 2층이지만 안쪽은 통층이다.
가을 하늘이 높고 푸르다. 청명한 가을 날씨 속에는 외롭고 쓸쓸한 감성이 스며있다. 가을이 깊어가면서 느껴지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은 인간을 사색과 성찰의 세계로 인도한다. 단풍 붉게 물들고 낙엽 휘날리는 늦은 가을날 산사의 풍경소리가 가슴 깊이 숨겨진 순수한 감성을 자극한다.

하여 속세를 떠나(속리산·俗離山), 법(진리·지혜)이 머무는 절(법주사·法住寺)을 찾아 나선다.

나는 법주사에 올 때마다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 생각이 난다. 우리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만 해도 법주사는 최고의 수학여행 코스였다.

법주사 가는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 전나무들이 길의 격조를 높여준다. 노랗고 빨갛게 물든 단풍이 햇살에 비춰 영롱한 광채를 발한다.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색상과 가슴 속 외로움을 교환한다.

법주사로 통하는 임도와 별도로 작은 오솔길에는 ‘세조길’이라 쓰인 문주가 세워져 있다. 세조길은 조선조 제7대 임금인 세조가 속리산에 요양하러 방문했을 때 법주사를 거쳐 복천암까지 오고간 순행길이다. 그래서 길 이름도 ‘세조길’이라 했다.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 쓰인 일주문을 넘어 속세를 떠나 불법의 세계로 들어간다. 대부분의 산사는 산비탈 지형을 이용하다보니 하나의 문을 통과할 때마다 높은 계단을 올라야하지만 법주사는 깊은 산중에 있으면서도 평지에 자리 잡고 있다. 금강문을 통과하니 전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 있고, 전나무 뒤에서 천왕문이 기다리고 있다.

천왕문을 통과하면 법주사의 상징과도 같은 팔상전(국보 제55호)을 만난다.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5층 목탑으로 신라 성덕여왕 때(720년) 조성됐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돼 인조 2년(1624)에 복원되었다. 팔상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모셔져 있다.
법주사 팔상전과 금동미륵불은 법주사의 상징과도 같은 조형물이다. 팔상전은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유일한 5층 목탑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폭 그림으로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모셔져 있다.

팔상전 앞에는 거대한 금동미륵불이 우뚝 서 있다. 근래에 조성된 금동미륵불은 팔상전과 더불어 법주사의 상징처럼 인식되고 있다. 법주사는 김제 금산사와 함께 신라 때 진표율사가 미륵불을 모신 사찰이다.

팔상전 안쪽으로는 정면에 대웅보전(보물 제915호)이, 왼쪽에 원통보전(보물 제916호)이 자리하고 있다. 팔상전을 지나 대웅보전으로 가다보면 두 개의 석등을 만나게 된다. 먼저 만나는 석등은 쌍사자석등(국보 제5호)으로 팔각석등을 두 마리의 사자가 앞발을 높이 치켜들어 받들고 있다. 법주사 쌍사자석등은 화엄사 각황전앞 석등과 함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석등이다.

쌍사자석등과 대웅보전 사이 앞마당에는 상대석에 사천왕이 새겨져 있는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이 당당하게 서 있다. 석등 앞에서 본 앞면 7칸, 옆면 4칸의 2층 팔작지붕의 대웅보전(보물 제915호)이 웅장하다. 대웅보전은 밖에서는 2층이지만 안쪽은 통층이다. 삼존대불(보물 제1360호)에게 삼배를 올린다.
절 담장 기와위에 내려앉은 낙엽들이 세상은 무상(無常)하다고 알려준다. 그런데도 인간은 뜬구름 같은 환상을 잡으려고 욕망을 불사른다. 봄에 싹이 터서 풍성한 여름을 보내고 나서 늦가을 미련없이 떠나는 나무들의 순환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다.

절 담장 기와위에 내려앉은 낙엽들이 세상은 무상(無常)하다고 알려준다. 그런데도 인간은 뜬구름 같은 환상을 잡으려고 욕망을 불사른다. 봄에 싹이 터서 풍성한 여름을 보내고 나서 늦가을 미련없이 떠나는 나무들의 순환은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질서다. 이런 자연의 법칙이야말로 부처의 설법이고, 모든 성현들의 가르침이다.

법주사를 출발해 속리산 문장대, 천왕봉으로 가는 길로 들어선다. 숲길을 걷다가 조그마한 저수지를 만난다. 길은 저수지를 옆에 두고 그윽한 숲길로 이어진다. 저수지에는 건너편 산봉우리가 그림자를 내려놓았고, 울긋불긋 물든 단풍도 물위에 그림을 그려놓았다. 열반에 든 낙엽들도 한곳에 모여 모자이크 그림이 됐다. 가을 정취에 취한 피라미들이 물속에서 천천히 유영을 한다.
아름드리 노송이 단정하고, 오색으로 물든 단풍들은 가을 속리산을 예쁘게 채색해 놓았다. 화려한 생을 마친 낙엽이 물과 함께 춤추며 흘러간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도 가을 산의 그윽한 정서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아름드리 노송이 단정하고, 오색으로 물든 단풍들은 가을 속리산을 예쁘게 채색해 놓았다. 커다란 바위와 숲으로 둘러싸인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고요히 흘러간다. 화려한 생을 마친 낙엽이 물과 함께 춤추며 흘러간다.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도 가을 산의 그윽한 정서 속으로 스며들어간다.

피부병 치료를 위해서 복천암에 자주 들렀던 세조가 목욕했다는 목욕소도 단풍으로 채색됐다. 이 목욕소에서 목욕을 하던 세조에게 약사여래의 명을 받는 월광태자가 나타나 ‘피부병이 곧 완쾌될 것’이라 말하고 사라진 후 세조의 피부병이 나았다 해 ‘목욕소’라 불렀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마음을 씻는다는 세심정은 휴게소로 활용되고 있다. 세심정에서 천왕봉 길과 문장대 길이 갈린다. 우리는 문장대 길을 통하여 복천암으로 향한다. 복천암 가는 길에는 아래쪽과 달리 붉게 물든 단풍이 시들어가고 있다.

복천암으로 들어서는데 느티나무 거목들이 일주문을 대신한다.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된 유서깊은 암자인 복천암.

복천암으로 들어서니 앞쪽에 복천선원이 있고, 선원 뒤편에 극락보전과 나한전이 자리하고 있다. 법주사 산내 암자인 복천암은 신라 성덕왕 때 창건된 유서깊은 암자로, 고려 공민왕이 극락전에 무량수(無量壽)라는 편액을 친필로 써서 내릴 정도였다.

세조가 1464년 이 절에서 신미·학조·학열스님과 함께 3일 동안 기도를 드린 뒤 세심정 아래 목욕소에서 목욕을 하고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세조길은 복천암에서 끝나지만 우리는 세심정으로 되돌아와 상환암을 다녀오기로 했다.

세심정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골짜기를 따라 오르는데 단풍이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런데 상환암으로 오르는 길의 경사가 만만치 않다. 계단을 오르면서 세상의 번뇌를 하나하나 내려놓으라는 뜻으로 여긴다. 마음 속 번뇌를 벗어놓고서야 하늘이 열리면서 학소대라 불리는 아름다운 바위봉우리가 나타난다.
천하절경을 이룬 학소대를 바라보며 바위 절벽에 새집처럼 걸려 있는상환암.

천하절경을 이룬 학소대를 바라보며 바위 절벽에 새집처럼 암자 하나가 걸려 있다. 상환암이다.

이곳 상환암은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전에 백일기도를 드렸다는 곳이다.

청담스님을 비롯한 수많은 고승들도 이곳에서 수도했다. 문외한의 눈으로 보아도 속세를 등지고 수도정진하기 그지없이 좋은 터임을 직감할 수 있겠다. 법당인 원통보전 뒤편 기암절벽에는 독성각과 산신각이 바위에 간신히 걸려 있다.

산신각 앞에 서니 속리산의 아기자기한 봉우리들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암자는 아기자기한 바위봉우리들 속에 핀 연꽃 같다. 온갖 풍상을 겪으며 억겁의 세월을 버티어 온 바위도, 그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늠름하게 서 있는 나무들도 모두 우리가 닮고자 하는 부처일 것이다.


※여행쪽지
▶속리산 세조길은 조선조 7대 임금인 세조가 속리산에 요양하러 방문했을 때 복천암까지 오고간 순행길이다. 울창한 숲이 그윽하고 가을철 단풍이 아름다운 세조길은 비교적 완만해 부담없이 걸을 수 있다.
▶코스 : 속리산터미널→법주사→저수지→세심정→복천암(왕복)
▶거리, 소요시간 : 9㎞(왕복), 3시간 소요(상환암까지 다녀오는 경우 1시간 추가)
▶속리산 터미널 근처에 수많은 식당이 있다. 세심정휴게소에서도 식사(비빔밥)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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