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5일(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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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인화의 '5월이야기']도미야마 다에코의 광주사랑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연구실장
국제학박사

  • 입력날짜 : 2020. 11.26. 18:31
한 예술가의 광주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실증적인 사례가 있다. 일본인 작가 도미야마 다에코다. 그는 40년 전 판화작품을 통해 전 세계에 광주의 5월을 알렸다. 예술작품으로 5·18을 알린 최초의 일이다. 5·18은 세계를 큰 충격에 휩싸이게 했다. 외신을 통해 5·18을 접한 세계 각국의 시민들은 희생된 광주시민들을 추모했다.

당시 언론 왜곡과 검열로 국내에서는 5·18을 잘 알지 못했다. 반면 해외에서는 언론보도와 현장사진 증언 자료 등을 통해 광주상황을 파악했다. 광주는 완전히 고립된 섬이었다. 그 때 5·18 시민학살에 대한 소식을 듣자마자 3주 만에 판화를 연작으로 제작한 이가 바로 도미야마 다에코다. 그는 한국나이로 100세다.

그가 지난 주 5·18광주민주화운동을 기념해 열린 학술대회에 화상으로 초대됐다. 참석자 모두가 손을 흔들며 반갑게 환영했다. 그의 작품전시는 광주에서도 몇차례 있었지만 학술대회는 처음이었다. 지난 해 7월 도미야마는 작품의 스토리북 6권과 작품스케치북 1권을 5·18민주화운동기록관에 기증했다. 광주는 답례로 학술대회를 개최해 그의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기록관은 2년 전부터 이 대회를 준비했다. 주제는 ‘경계를 넘는 화가: 도미야마 다에코의 삶과 예술’이었다. 하얀 단발머리의 작가는 거침없는 목소리로 광주를 말했다. 10일간의 항쟁을 판화로 엮어낸 이야기는 감동 그 자체였다. 그리고 살이 떨리게 역동적이었다. 참석자 모두가 숨을 꼴깍 삼키며 몰입됐다.

도미야마 다에코의 광주사랑은 계속 변함이 없다. 판화를 제작하여 슬라이드를 만들었고 이후 영화를 제작했다.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를 도모해 지속적으로 독일, 프랑스, 일본, 남미, 그리고 한국 등 여러 국가의 도시에서 전시회를 갖곤 했다. 그의 대표작은 ‘묶인 손의 기도’, ‘자유광주’, ‘쓰러진자를 위한 기도’ ‘쓰러진자를 위한 기도 -1980년 5월 광주’ 등이다. 모두가 한국에 대한 애정을 오랜 시간을 버무리고 숙성시킨 것들이다. 작품에 그치지 않고 이를 DVD로 제작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상영됐다.

“시부야(澁谷)에서였어요, 우리 여자들 모임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거든요, 사람들을 모아서요. 거기에 뉴스가 꽝 하고 나온 거예요. 와아아 탄식소리가 나오고….”

도미야마는 ‘1980년 5월 18일’의 ‘그날’을 광주MBC (2020) 내인생의 5·18에서 토로했다. TV뉴스 영상과 신문보도, 사진을 의지해 스러져가는 광주시민과 함께 고통스러워 한 나머지 울면서 판화를 완성했다고 했다. 5월18일의 그 순간에 도미야마가 다른 동지들과 함께 큰 함성을 질렀던 것, 홀로 판화를 제작하면서 울었던 것은 이미 그녀가 한국이라는 ‘그림 속에 들어가 그림 속에 사는’ 상태였음을 의미한다고 마나베 유코(도쿄대학 교수)는 이야기한다.

도미야마는 1921년 고베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구 만주 대련과 하얼빈에서 지냈다.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를 다녔던 그는 일본의 식민지였을 때부터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컸다. 일본이 전쟁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을 항상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리하여 평생에 걸쳐 일본의 참회와 반성을 촉구하는 그림을 그렸다. 강제 연행된 조선인과 종군위안부 문제, 그리고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주제로 작업해 왔다. 조선인 강제징용문제부터 유신독재시절의 반독재 민주화운동까지 한결 같이 한국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각광 받지 못했다.

쪽진 머리의 어미가 계엄군 총에 맞아 쓰러진 아들을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광주 피에타, ‘같이 죽고 같이 살자’며 결의를 다지는 광주시민들. 괴물로 변해버린 계엄군의 흉측한 얼굴들, 구호들 등 그동안 작가가 해왔던 작품보다 더 투박하고 거칠게 강한 느낌으로 표현 했다. 도미야마의 5·18판화들은 간결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갖고 있다. 그와 광주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은 셈이다. ‘광주’가 한 작가의 작품에서 살아 숨쉬며 축적되고 있었다. 또 역사를 기억하고 증언하며 기록돼가고 있다. 이 숭고한 작업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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